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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칠레 푸콘. #171 사랑이 듬뿍 담긴 도시락

by 지구별 여행가 2017. 12. 25.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0시였지만, 산티아고행 버스 출발 시간은 저녁 8시였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어디를 멀리 가보자니 버스 시간이 애매했고, 근처를 돌아다니자니 갈 곳이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밖에는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숙소에 있는 것 외에는 좋은 방법이 없어보였다. 나중을 위해 미리미리 예능동영상들을 다운 받아놓았다.

점차 밖으로 나가는 횟수도 줄었고 귀찮음이 늘었다. 사진을 찍는 횟수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다시 한번 슬럼프가 온게 분명했다. 장기 여행중 슬럼프는 종종 찾아오는 일이기에 어느정도 감안은 했지만, 그 텀이 예전에는 길었다면, 근래에는 주기가 조금씩 짧아짐이 느껴졌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된 것을 육체와 정신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노트북으로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나를 쳐다보고는 어디로 가는지, 몇시 출발 버스인지 물었다. 오후 8시에 출발하여 산티아고로 간다하니 그때까지 자기 집처럼 편하게 쉬었다가 가라 하였다. 참으로 친절한 주인이었다.

잠시 동네를 돌아다니고는 숙소에서 쉬다가 6시쯤 저녁밥을 해먹으려는데 어제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준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자 하였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저녁 10시쯤에 저녁식사를 하기에 이는 점심식사쯤이었다.

고맙다며 자리에 앉으니 요리가 코스로 대접되었다. 스타터로는 아보카도의 씨앗을 제거하고 그 안에 마요네즈를 버무린 참치가 들어가 있었다. 내꺼는 조금 느끼할지 모르니 참치만이 올려져있었는데, 그 맛이 참으로 대단했다. 바로 이어지는 스프. 이정도면 한끼식사 대용으로 충분했기에 잘 먹었다고 인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려하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기다리라하였다.

곧 이어진 메인요리르로는 구운 닭가슴살과 샐러드였는데 음식이 내 앞에 내려지자마자 고마움을 넘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주는 것이니 염치 불구하고 열심히 먹었다.

요리를 다 먹고 가장 먼저 싱크대로 뛰어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음식의 양이 많은 만큼 설거지가 상당했는데, 한참 집중하여 접시를 닦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다가와 'Tea or Coffee'라 물었다. 잠시 접시를 놓고 달달한 디저트에 커피까지 마시니 흠잡을데 없는 식사였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그들은 영어를 못하니 대화의 방법이 없었다. 문득 구글번역기가 떠올라 내가 먼저 그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작년에 처음 푸콘을 방문했다는 그들은 이 곳이 너무 좋아 앞으로 매년 이맘때쯤에 푸콘을 방문할 것이라 하였다. 직업은 복지사였는데, 아낌없이 나눠주던 그들의 점심식사 덕분인지 그들의 직업이 곧장 수긍이 되었다. 서로 구글번역기의 위대함에 감탄하며 세상 좋아졌다고 느낄 무렵, 그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아르헨티나로 돌아가야할 시간이란다. 함께 사진을 찍고 푸근한 마음을 가진 그들과 헤어졌다.

그들은 떠나기 전 마지막까지 나를 감동시켰는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은 멀다며 어디서 구해왔는지 작은 통에 샌드위치를 가득 넣어주었다. 버스에 올라타 도시락을 여니, 사랑이 듬뿍 담긴 도시락이었다.


2014.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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