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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칠레 푸콘. #169 연속되는 작은 행운들

by 지구별 여행가 2017. 11. 29.

정말 아침이 차려져있었다. 고작 빵 몇개 꺼냈고 몇개의 소스와 잼을 테이블에 올려놓는게 뭐 힘드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해진 아침식사 시간 전에 떠나는 단 한명의 여행자에게 이런 선의를 배품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그 시간, 천사 호스텔의 이름모를 직원덕분에 여유롭게 토스트와 차 한잔을 마신 후 나올 수 있었다.  

내가 꼽는 몇 안되는 최고의 숙소 중 하나였다. 청소상태같은 기본적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소르노행 버스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는데 눈을 뜨니 아르헨티나 입국심사소였다. 잠에서 덜 깨 이 곳이 아르헨티나인지 칠레인지 헷갈렸다. 옆에 앉은 예쁜 여성 두명은 내릴 생각을 안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은 내려 도장을 받았다. 다행히도 여권을 보니 아르헨티나 출국도장이 맞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칠레쪽 입국심사소로 넘어가는데 가도가도 입국심사소가 나오지가 않았다. 혹시 아르헨티나 입국심사소 근처에 칠레 입국심사소가 있어서 미리 받고 넘어왔어야했나 싶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떻게 돌아가지?, 스페인어도 못하는데 버스기사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하지...?' 한참을 고민하는데 저멀리 입국심사소가 보였다. 

참, 사람 간떨리게... 좀 가깝게 붙여놓지.

칠레 임국심사는 까탈스럽기로 유명했다. 가방에 걸려있는 자물쇠는 모조리 부숴버리고 가방을 열어본다는 소리를 들었었기에 미리 자물쇠를 풀어놨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방들을 한쪽에 싹 모으고 마약탐지견이 한참동안 냄새를 맡았다. 생각외로 가방을 열어보지는 않고 간단하게 끝났다.



오소르노에 도착해 버스표를 알아보니 약 7시간 후 출발이었다. 어차피 칠레에서의 일정이 한참 남아있기에 여유있게 돈을 뽑고 버스티켓을 구매했다. 다행히도 버스터미널내에 무료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여 그간 보지 못했던 뉴스들을 읽으며 잠시 시간을 보냈다.

계속 이 곳에만 있기에는 무언가 아쉬웠다. 무작정 시내로 나가 마을의 이곳저곳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근처 JUMBO마트가 있다하여 그 곳을 기점으로 주위를 둘러보려는데 한참동안 걸어도 JUMBO 마트는 전혀 보일 기미가 없었다. 발길을 돌려 다른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옷가지가 산처럼 쌓여있는 가게가 있었다. 중고 옷을 파는 가게였다.

유우니 사막이 추우니 이 곳에서 따스하게 입을 옷을 몇개 사려고 들어갔다. 가격은 너무나 저렴했는데, 바지 한벌에 약 1,000페소, 우리나라돈으로 1,5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바지 두벌과 따스한 장갑을 2,000페소로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장갑은 돈도 받지 않았다. 계산의 착오였는지 아님 서비스였는지 나는 알길이 없었다.



저녁 늦게 푸콘에 도착할테니 간단히 식사를 만들어먹을 양파와 감자, 참치를 사고 근처 한적한 공원에서 책이나 보기 위해 자리잡았다. 책을 읽으려 가방을 뒤져보니 책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터미널로 돌아와야만 했다.

푸콘행 버스에 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금세 푸콘에 도착해있었다. 숙소를 구해야했기에 어느 골목으로 가면 숙소가 있을까 육감을 따라가려는데 호객 아주머니가 붙었다. 가격을 물어보니 6,000페소. 상당히 괜찮은 가격이었다. 와이파이도 잘 연결이 되며 주방이 굉장히 깔끔하다는 그녀의 말이 조금은 의심되었지만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간판도 없는 일반 가정집을 개조하여 만든 이 숙소는 호객으로 데리고 온 사람만 묵는 듯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게스트하우스라고 생각을 못할 외관이었다. 몇몇의 현지인들이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해줬다. 도미토리를 배정받고 잠시 침대에 누워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아주머니가 키를 주면서 4인 도미토리 방이지만 혼자 쓰라며 키를 건내주었다. 행운이 넘쳐흘렀다.

배가 고파 쓰러지기 직전이었기에 주방에 가서 간단하게 양파와 감자를 의깬 샐러드를 만들어먹으려는데 아까 나를 반갑게 맞이하여 준 현지인들이 함께 치킨 수프를 먹자며 접시에 한움큼 퍼주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쓰라린 속을 잠시 달래고 감자를 으깨는데 이따가 함께 먹으라며 빵도 한아름 안기고 방으로 돌아갔다. 이런 숙소에 올 수 있음이 행운이었다.


우연찮게 돌아다니던 거리에서 값싸게 옷도 구하고, 저렴한 숙소에서 너무나 착한 사람들과 하루를 보낸 오늘은 나에게 운이 따르는 날이었나보다.


2017.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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