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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볼리비아 라파즈. #182 내꼴을 보고도 소매치기를 하다니.

by 지구별 여행가 2018. 4. 29.

라파즈는 생각외로 도시가 아름다웠다. 아침 7시전후의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조용하며, 차분한 느낌이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어젯밤 사라진 내 신발, 더럽고 찢어진, 외적인 미관을 포기한 그저 발을 감싸는 기능만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신발은 버스앞쪽 어딘가에 찌그러져있었다.


숙소는 이미 알아둔 상태였기에 지도 어플을 켜고 가는데 숙소 앞 작은 골목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꽤 나이가 많아보이는, 수염도 더부룩한게, 세상 상식으로 보면 노숙자로 보이는 남자가 차로 한가운데에 널부러져있었다. 우연찮게도 내가 지나가는 그 타이밍에 현지인 두명이 어디선가 뛰어나와 나를 부르며 노인을 돕자고 하였다. 그냥 무시하고 가면 별일 없겠지만, 아무리 봐도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노인이 위험해보였고, 그들의 눈빛에 뭔가... 진정성이있었다.


어찌어찌 여차저차 상황상황상 내가 노숙자를 거의 들쳐 엎고 있었다. 어찌나 무겁던지 다른 곳에 신경을 팔 시간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두명의 청년은 어정쩡하게 나를 도왔는데 속으로 '제대로 힘 좀 쓰지, 짜증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겨우 노인을 도보에 옮겨높으니 두 명의 청년은 쏜살같이 사라졌다. 물론 노인네도 정신을 차리더니 고맙다면서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졌다. 

아침부터 힘이 쪽 빠졌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보통 여행중 분실 도난 위험을 방지하기위해 돈을 분산하여, 메인 지갑은 큰 배낭에, 하루이틀치 금액은 보조가방에 넣어두고 다녔는데, 방값을 지불하려고 보니 보조가방이 열려있고 돈이 없었다. 미리 숙박비 낼것을 계산하여 넣어두었는데 계산을 대충해보니 8만원 정도였다. 

어쩜 그리 어정쩡하게 내 주변을 돕던 그들이 떠올랐다. 당했다. 그들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밖에 없었다.

 8만원이면 큰돈이었다. 그러나 돈보다 내 자신한테, 바보같은 수법에 당한 내 자신한테 한심스러웠다.


카메라나 핸드폰을 도둑맞은게 아니었음이 다행이지만, 당시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내가, 내가, 내가 소매치기를 당하니... 이렇게 없어보이고 거지꼴로 다니는데...'

기분이 찝찝해 쇼팡에 앉아있는 동안 한국인을 만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 언잖은 기분을 풀었다. 그 옆에는 세바스찬이라는 콜롬비아인도 함께 있었는데, 영어와 스페이언을 능숙하게 하는 그의 존재는 라파즈에서의 여행에 큰 도움이 될 듯 하였다.


그 곳에서 만난 한국인은 나와 일정이 같았다. 함께 루레나바케 투어 정보를 얻으러 시내로 나왔다. 루레나바케에서 할 수 있는 팜파스 투어는 미니 아마존 체험이라고 하는게 좋을 듯 하다. 브라질 마나우스 지역에서 제대로 된 아마존 유역을 볼 수 있는 것같은데 원채 가기도 힘들고, 여행 루트상에 굉장히 애매한 위치에 있기에 브라질 여행을 메인테마로 잡고 오는 사람이 아니면 보통은 페루나 볼리비아에서 아마존 투어를 진행했다. 물론, 아주 당연히, 값도 훨씬 저렴하다.





루레나바케까지 가기위한 방법은 두가지다. 버스, 비행기. 내가 무엇을 선택했겠는가? 당연히 버스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번엔 비행기였다. 

라파즈에서 루레나바케까지 가는 길의 별명은 '데스로드' 죽음의 길이다. 버스가 하나 달릴 수 있는 길 옆으로는 낭떠러지가 보이는 아주 위험한 길이었다. 건너편에서 버스가 한대오면, 서로 길을 비켜주기 위해 바퀴하나가 낭떠러지로 나간다는 소문도 있었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길이다. 

여행의 후반부라 그런지 몸은 사리게된 경향도 있었고, 왜인지... 뭐랄까...? 촉이 좋지 않았기에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아마조네스 비행기는 600볼리비아 볼정도였고, 당시 보아항공과 탐항공은 취항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마조네스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어보였다. 내일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숙소 근방으로 돌아오니 큰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 루레나바케를 갈 인석이형과 한국인 일행 한명은 오늘 유우니를 다녀올 생각이었으므로 짐을 싸서 나왔고, 나는 심심하게 쇼파에 앉아있는 세바스찬을 데리고 나왔다. 

함께 커피를 한잔 마신 후 밖을 보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즐길 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무대위로 약 100여명의 사람이 북, 트럼펫, 이름 모를 수많은 악기를 들고 올라와 엄청난 소리로 음악을 연주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그룹은듯 그들의 뒤로는 50년 전통이라는 거대한 팜플렛이 걸려있었다. 세바스찬은 조금 더 보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30여분 봤으면 충분히 봤다 생각한 내가 살짝 들어가려는 뉘앙스를 풍기니 그 역시 따라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누워 별로 할게 없으니 오만 잡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중에서 최고의 잡생각은 역시나, 소매치기였다.

'내 꼴을 보고 소매치기를 하다니... 나처럼 돈 없이 보이는 사람이 어디있다고... 더 거지꼴로 다닐까...?'


행동을 조심한다거나, 돈을 다른 방법으로 분산한다거나 하는 정상적인 생각은 못하고, 비정상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한심한 나였다.


2014.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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