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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볼리비아 유우니. #181 운이 따르는 남자. 파업이 풀렸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8. 3. 26.

대략 10시쯤이 되니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투어를 할 계획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계획도, 어딘가를 가봐야할 계획도 없었다. 그저 포토시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였기에, 점심먹기 전까지 숙소에서 뒹굴거렸다. 

경진이 누나와 만나서 어제 유우니에서 찍은 사진을 공유한 후 아베니다 호텔 앞으로 가서 이 파업의 현장을 뚫고나갈 그룹을 모집했다. 그러나 전혀 모이지 않았다. 이미 나갈 사람은 몰래 운영되는 지프를 타고 나간듯하였고, 파업이 심해져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점점 줄었다. 관광객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찾아간 버스회사 앞에서 서양인 둘이 380불에 지프를 구했다며 함께 가자고 했지만, 비싼 가격에 우물쭈물하다가 함께 갈 타이밍을 놓쳤다.




경진이 누나와 모녀를 만나 점심을 먹으며 앞으로의 일정을 논의했다. 어제 선영이네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베니다 앞에서 하루종일 앉아있으면 지프차 운전기사의 딜이 먼저 들어온다했기에 일단 아베니다 앞에 가서 무작정 앉아서 기다렸다. 허나 인생사 내 마음대로 되는가. 약 2시간을 넘게 있었지만 그 누구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경진이 누나는 열차무덤을 간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참 후에 돌아온 그녀는 그냥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가겠다며 오늘까지 차를 구하지 못하면 내일 오전 비행기표를 구해서 떠날 예정이라 하였다.

일단 오늘은 허탕을 친듯 하니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이따 저녁때 다시 보기로 했다.


가뜩이나 고산지대로 몸도 좋지 않은데 감기기운이 몰려와 숙소로 돌아와 누웠다. 약 오후 3시쯤 잠시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 사이 경진이 누나는 비행기표를 끊어서 유우니를 빠져나간듯 하였다. 나도 오늘내에 빠져나갈 방도를 구하지 못하면 극단적인 방법이지만 나역시 그녀와 마찬가지로 비행기를 타고 빠져나가든지 해야만했다. 

잠을 푹 자서 그런지 몸은 아주 개운했다. 잠에 취한동안 파업현장의 변화가 있을까 하여 아베니다 호텔 앞으로 갔는데, 브리사 문이 열려있는게 아닌가. 어찌된일지 물어보니 오늘 대통령이 찾아오기로 해서 하루동안 파업을 푼다하였다. 역시나 나는 운이 따르는구만.


시간을 지체할 틈이 없었다. 일단 버스회사 앞으로 가니 엄청난 양의 버스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포토시로 갈까했지만 이미 유우니에서 상당시간을 보낸터라 라파즈로 바로 가기로 했다. 굳이 광산마을을 들릴 이유도 없었다. 라파즈 직행버스와 경유버스 모두 운행되고 있었는데 괜히 몸도 안좋은 상태에서 무리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오후 8시에 출발하는 직행버스를 구매했다. 

드디어... 나갈 수 있구나... 거기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밤버스를 타고 나갈 수 있다니!



호스텔에 뛰어들어가 싱글벙글 웃으며 버스티켓을 구했다고 하니 아주머니 역시 웃는 얼굴로 답해주었다. 오후 8시 버스라 체크아웃후 숙소에서 있어도 되냐 물어보니 아무런 상관이 없다 하였다. 사실 이 호스텔에서 몇 번의 사소한 다툼, 이를테면 소금사막 데이투어를 갔다가 옷이 다 젖어서 잠시 난로를 켰는데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난로를 확 꺼버리는 등이 일로 기분이 상당히 상했었는데 오늘 보여준 그녀의 호의에 내가 조금 쪼잔한 마음을 지녔었나라는 반성을 했다.


근처 시장에 가서 점심을 먹다가 중국애들을 만났는데 오늘이 월드컵 개막식이라며 함께 보자 하였다. 경기 역시 브라질 대 크로아티아 경기라 꽤나 볼만한 경기일듯 했다. 그들의 숙소에서 봤기에 경기가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놓고 유우니에서 먹는 마지막 야마스테이크를 즐겼다. 


저녁 8시 버스라 그 사이 파업을 강행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까 걱정했지만 그런일을 없었다. 모든 외국인들이 다 나갈 준비를 하는건지 버스터미널앞은 각국의 여행자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길고긴 파업의 현장에서 단 하루 따르는 운을 얻어 빠져나왔다.


2014. 06. 11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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