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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일본, 교토

평범과 휴식, 그 사이 어딘가. #1 얼마만에 소소한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가.

by 지구별 여행가 2017. 5. 9.

작은 배낭을 하나 걸쳐메고, 크룩스 신발을 질질끌며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 직원이 여행객 한사람씩 입국심사증에 기록된 내용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한명씩 두명씩 빠른 속도로 넘어오더니 내 입국심사증을 보고는 호텔이름을 적어야한다 지적했다. 당연히 호텔 예약을 안하고 교토 시내에서 찾을 생각이라 말했지만, 내가 막무가내로 일본에 왔듯이 그 역시 막무가내로 호텔이름을 꼭 적어야한다 하였다. 호텔을 예약하지 않고 오는 사람은 어쩌란 말인가하는 잠깐의 궁금증이 들었지만, 그의 행동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가서 나와 비슷하게 무언가를 누락한 사람에게 호스텔 이름을 하나 받아 적어 제출했다.

짐이 없었기에 수화물 찾는 곳을 지나 공항을 나가려는데 수화물 신고 직원이 나를 급히 붙잡고는 짐을 찾아가라 하였다. 들고온 짐이 없다하니 내 작은 배낭과 여권을 번갈아 보고는 아무말 없이 밖으로 나가게 해주었다.

함께 타고 온 비행기 안 한국사람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는지 하루카 열차에는 한국인이 많지 않았다. 연인이나 친구끼리 몇몇이 앉아있었다. 하루카패스를 구입하면 교토역에서 아라시야마로 가는 지하철을 공짜로 환승할 수 있었기에 아라시야마를 구경후 저녁에 교토시내로 돌아가 숙소를 구하기로 했다.


아라시야마는 치쿠린이라 불리우는 대나무 숲이 유명한 곳이지만 그 곳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블로그를 구경하다가 사진들이 뭐랄까, 일본스러워서 왔을 뿐이었다. 역에서 내리니 교토 관광객은 이 곳에 다 모인듯 사람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나왔다. 몸을 예열시키고 본격적인 일본여행을 하고 싶었기에 조용한 외곽으로 첫 발걸음을 뗏다

다리를 건너니 산에 지붕이 보이는 신사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니 아무도 없었는데 대나무를 타고 물이 졸졸 흐르는 약수터같은게 있었다. 목이 말랐는데 잘됐다 싶어 한바가지 가득 떠서 물을 마시니 꿀맛이었다. 여행중에 신사가 보이면 항상 이러한 곳이 있어서 목이 마를때마다 마셨는데 여행이 끝난후 보니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씻는 물이었다. 손을 씻는 물이면 어떻고 마시는 물이면 어떠한가. 목은 적셨고, 시원했고, 별탈은 없었으니. 내 몸 하나는 멀쩡했지만 그들의 문화 예정에 크게 어긋난게 아닌지 걱정스러울 뿐이다.







조용했다. 학교가 끝난 아이라도, 장을 보러가는 아주머니라도, 슬리퍼를 질질끌고 담배를 피우는 백수라도, 산책을 하는 할아버지라도 보일만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우체부만 돌아다닐 뿐이었다. 사람에 치여 일을 하다보니 이러한 조용함이 너무나 반갑고 오랜만이었다. 

슬슬 배가 고파 식당을 찾다가 작은 식당을 만났다.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손님은 없었고, 주인아저씨는 칼을 갈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일본어를 몰라 멀뚱멀뚱 보고 있으니 영어로 적힌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가츠동을 주문하고 정면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을 보니 북한이야기가 나왔다. 일본이 한국과 멀지 않다는 것이 새삼 실감되었다.

800엔정도 가격에 가츠동과 밑반찬, 그리고 부채가 나왔다. 내가 더워보였나보다. 그다지 덥지는 않았지만 기껏 챙겨준 부채를 한쪽에 팽겨쳐두기에는 마음이 걸렸다. 밥 한 숟갈을 먹으면 왼손으로 부채를 부쳤다. 싱글벙글 할머니가 웃었다.

그녀는 내가 밥을 먹는 동안 계속 나를 쳐다봤는데 내가 다 먹었을 때쯤에 맞춰 따뜻한 커피 한잔이 나왔다. 이게 일본인가 싶었다. 밥한톨 남기없이 싹 먹고 부채는 잘 보이는 곳에 고히 모셔두고 나왔다. 슬슬 아라시야마의 대표 관광지 치쿠린으로 가야할 때였다.

바벨탑이 무너진 듯 혼돈의 언어속을 묵묵히 걸어갔다. 지도를 보니 텐류지를 들렀다가 치쿠린으로 가는 길로 가면 될 듯 했다. 텐류지 입장권의 하나는 정원만 볼수있고 하나는 내부를 들어갈 수 있는데 굳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나 싶어 500엔티켓을 구입했다. 500엔을 내고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싶을정도로 별게 없었다. 사진과 똑같은 모습이었고, 잘 찍힌 사진 한장만 보면 되겠다 싶었다. 

치쿠린을 가면서 곧게 길게 뻗은 대나무 숲과 갈대,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 느낌을 기대했지만 완전 나만의 착각이었다. 길은 상당히 짧았고, 내가 운이 없었던 것인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매력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확 다가왔기에 급하게 빠져나왔다.





아까의 그 한적함이 그리워졌다. 지도에 작은 호수가 있기에 그 곳을 목적지로 잡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20세기 소년에나 나올 것 같은 집들을 지나쳤다. 다리가 지치면 자판기 옆 작은 벤치에 앉아 쉬니 꼭 만화책의 세계로 들어온 듯 하였다. 길에 핀 꽃, 나무, 구름, 이렇게 가까이서 본게 얼마만인가. 향긋한 풀향과 싱그러운 바람에 아름다움을 느끼며 쉬염쉬염. 천천히. 느긋하게. 길을 걸었다. 

어디선가 큰 함성소리가 들려 가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고등학생들이 야구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조금 더 앞으로 가니 호수에 도착했다. 입구에 작은 상자가 있었고 200엔이라 쓰여있었지만 나보다 한발 먼저 그 곳을 들어간 현지인은 돈을 내지 않았다. 나 또한 잠시 눈을 감고 상자를 못본척 입구를 지나쳤다. 말그대로 작은 호수였기에 여행자가 올만한 곳은 아니었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었다.





교토역으로 오니 교토타워가 우람하게 서있었다. 정말 20세기 소년에나 나올법한 타워였다. 안타깝지만 예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뭔가 이 도시에 동화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토마토호스텔이라는 저렴한 숙소에 가보니 이미 예약이 꽉 찬 상태였다. '음 싸니깐 그럴 수 있지, 다른 곳 숙소 빨리 풀고 쉬자'라는 나의 생각은 처참히 박살나버렸다. 이 호스텔 이후로 8곳의 호스텔을 들렀는데 모두 자리가 없었다. 그나마 한 곳에 숙소를 찾았는데 매트리스는 다 꺼지고, 사람도 없는 아주 조그마한 호스텔이 무려 3,000엔을 받았는데 이 가격에 이 곳에서 자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방 하나를 커텐으로만 구역이 나뉘어져 있는 2,500엔 도미토리를 찾아 짐을 풀었다. 그나마 교토역이 가까웠고, 이 근방에서는 괜찮은 숙소가 없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친구의 이름은 '와카'였는데 아주 성격이 밝았다. 잠시 그와 농담따먹기를 하고는 방에 누웠다.



식사를 할 겸 교토의 저녁 모습을 보러 돌아다녔다. 성시경이 그렇게 감탄했다는 편의점의 샌드위치를 하나 베어물고 프렌차이즈 식당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팔았는데 종업원 수를 최대한 줄인 듯 모든게 셀프였다. 음식도 주문하자마자 곧 바로 나왔다. 일본어를 읽을 줄 몰라 주문 자판기 앞에서 끙끙거리니 여직원이 국수를 삶다말고 나와서 대신 계산해주었다.

싼 가격이기에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맛있었다. 이 곳이 양이 적은 것인지 원래 일본 식당의 음식이 양이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다지 배는 차지 않았다.


숙소 입구에서 와카와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듯 보이는 서양인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도 껴서 마실까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녔던 피곤함이 누적되있었다. 가벼운 맥주한잔은 오늘만 넘기기로 하였다. 

밤외 되니 한두명씩 숙소로 돌아왔고 옆사람의 숨소리도 들릴만큼 가까운 매트리스 위로 한둘씩 누웠다.


2017. 0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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