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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일본, 교토

평범과 휴식, 그 사이 어딘가. #2 좁은 골목길에서 교토의 정신을 만나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7. 5. 21.

얼마 전, 우쿠렐레 동호회에서 수업 후 뒷풀이를 하다가 만난 사람 한명도 오사카를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우연찮게도 출발 날짜까지 똑같았다. 교토에만 3일 머물 예정이라 하고서는 오사카에서 교토를 방문할 때 연락을 해달라고 했었는데 오늘 연락이 닿았다. 남자친구와 같이 올 것이라 했기에 점심식사를 하고 청수사 여행을 즐기기로 하였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옮길 계획이었지만 눈을 뜨니 귀찮았다. 주말이라 다른 숙소도 꽉 차있을 것 같았고, 하루만 더 있으면 되는 건데 굳이 옮겨야 하나 싶었다.  

12시 약속이 1시로 미뤄져서 친구가 부탁한 물건을 사기위해 잠시 돈키호텔에 들렀다가 교토타워 앞에 섰다. 유동인구가 가장많은 이 곳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유럽이면 모르겠지만 동양인이 바글거리는 이 곳에서 순간 서로 놓치면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연락을 위해 오픈된 와이파이를 찾아 길거리를 헤메이다가 스타벅스 앞에서 와이파이를 잡아 연락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어찌 핸드폰없이 약속을 정하고 잘 만났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진보된 기술에 생활양식이 바뀌어버린 우리였다.

그녀를 이 곳에서 만나니 한국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둘은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여유롭게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셨고, 나는 어제 사둔 2리터짜리 물을 마셨다.



근처에 저렴하면서 괜찮은 스시집이 있다하여 같이 가기로 했는데 기차역 안에 있단다. 공항, 기차역에서 파는 식당은 맛이 떨어지고 가격은 비싸다는 내 고정관념 더하기, 블로거의 추천이라는 말에 믿음이 바닥을 쳤지만 일본에서 스시 한접시 먹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고 따라갔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나쁘지 않았다. 한접시에 1,300원정도로 저렴한 편이었고, 현지인들도 많았기에 평이 나쁜 곳 같지는 않았다.


여행을 오기 전,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얻으려 검색을 해보니 청수사를 포함해 금각사, 은각사, 철학의 길 등 수많은 관광지가 소개되어있었다. 그다지 끌리는 곳은 없었기에 다른 곳은 모두 건너뛰고 청수사 한 곳만 보는 일정으로 잡았는데 그들 역시 청수사만 볼 계획이었기에 함께 움직이기 좋았다. 100번를 타고 도착한 청수사 앞은 그간 교토에서 만나지 못한 한국인이 모두 모여있는 듯 하였다. 




날씨는 정말 깨끗했다. 유카타를 입고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으며 청수사를 구경하는데 사람들이 줄서서 나무막대점을 하고 있었다. 100엔이면 내 운을 테스트 해 볼 수 있었기에 한번 해기로했다. 둘이 먼저 한 후 내가 마지막에 했는데 나름 열심히 섞은 후에 뽑았다고 생각한 내 점괘는 그녀의 남자친구의 점괘와 똑같이 나왔다. 전혀 섞이지 않은 듯 하였다. 종이에 적힌 검은 것은 글자요, 하얀 것은 종이요. 우리는 까막눈이었기에 이게 무슨 뜻인지 알 턱이 없었다. 옆의 일본인에게 다가가 점괘가 적힌 종이를 내밀며 'good or bed?' 물어보니 'So so'란다. 대흉이 아닌게 어디인가.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이 나왔다. 궁금하여 올라가보니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장애인들 몇명에서 여러가지 음식을 팔고 있었는데 장사가 끝난 듯 정리를 하고 있었고, 조금 더 앞쪽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는게 전부였다.










청수사를 빠져나가려는데 유카타를 입은 작은 꼬마아가씨가 보였다. 귀여워서 사진을 몇 장 찍고 걸음을 떼었는데 꼬마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꼬마아가씨와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물어보니 카메라를 받아들며 한쪽에 앉으라하였다. 어찌나 도도한 매력을 갖고 있는지 살짝 손을 거내봤지만, 나를 힐끗 쳐다볼뿐 손은 잡아주지 않았다.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갔지만 너무나 좋았던 곳이 이 곳, 청수사였다.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으며 날씨가 너무 화창해 렌즈를 들이대면 작품이 쏟아져나왔다.







그들에게 다음 일정이 있는지 물어보니 교토에서의 일정은 끝난 듯 하였다. 그들이 타고 돌아갈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도중 눈길을 사로잡는 예쁜 골목이 나와 그 곳에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청수사부터 숙소까지는 대략 3km,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언제나 나의 여행 버릇처럼 밖으로 빙돌아 숙소로 가기로 했다. 작은 강에서 낚시하는 사람, 놀이터에서 아이와 시소를 타는 젊은 부부의 사진을 찍으며 골목을 돌아다녔다. 



어느 골목안에서 오토바이와 작은 돌을 만난 순간 이 모습이 교토의 모든 걸 대변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좀 더 편하게 세워놓으려면 이 작은 돌 하나 부숴버릴 수 있지만, 옛 것을 그대로 지키고 그들의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약간이 불편함을 인내하는 교토의 모습과 일치했다. 연신 돌맹이와 오토바이 사진을 찍어니 옆에 있는 작은 놀이터의 아이들이 나를 쳐다봤지만 신경쓸 틈이 없었다. 좁은 골목 어디선가 교토의 정신을 본 나에게 그들의 시선은 이미 들어오지 않았다.

이름 모르는 거대한 사원이 숙소 앞에 있었는데 닫혀있었다. 원래 문을 열지 않는 곳인가 싶어 사진 한장을 찍고 숙소로 돌아오니 6시간이 지난 후였다. 도시락 판매점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작은 선술집이 없을까 찾아다녔다. 





나름 교토역 근처에서 머물고 있었기에 술집들이 많았는데 내가 원하는 술집의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손님이 3~4명이면 꽉 차는 선술집, 안경을 쓰고 50대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남자가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선술집, 문은 여닫이 문으로 되어있는데 철판에서 볶아지는 따뜻한 음식의 김이 유리창에 껴서 사람들의 실루엣만 보이는 그런 선술집, 나는 그런 선술집이 가고 싶었다. 하지만 끝끝내 찾지 못하였기에 다음번에 갈 도쿄여행을 기약하며 세븐일레븐에서 맥주와 과자를 하나 사 숙소 앞 작은 간이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선술집과 게스트하우스 간이테이블은 여러모로 다른 느낌이었지만, 아까 말한 선술집의 느낌이 아니라면 게스트하우스 앞 테이블의 작은 초를 켜고 자전거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맥주를 한 잔하는게 더욱 운치있다 생각했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에 사람들은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의 교토에서의 마지막 밤도 지고 있었다.


2017. 0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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