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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남미

볼리비아 유우니. #178 스님, 수행자의 덕목을 보았습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8. 1. 28.

아타카마 2000의 파업영향인지 우리가 예매한 버스를 타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어젯밤 부족한 잠을 잔 탓에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칠레 국경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일처리가 너무 답답했다.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느렸다. 세월아 네월아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에야 결국 볼리비아 입국이 승인되었다.

입국심사소를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버스기사가 승객 모두 내리라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황량한 벌판이었지만 현지인들은 주섬주섬 자신들의 짐을 챙겨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 셋은 이 곳이 어딘지도 몰랐기에 버스기사에게 이 곳이 유우니가 맞냐 물어봤지만, 운전기사는 한쪽 방향을 가리키면서 무조건 버스에서 내리라하였다. 이것 역시 유우니 파업의 여파인듯했다.



나는 초행길이었지만, 민철이와 선영이는 두번째 방문이었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여행코스로 잡고 온 그들은 유우니에서 소금 사막 투어 후 아타카마 사막만 보기 위해 잠시 내려왔던 것이었다. 당연히 둘은 소금사막 투어를 할 생각이 없었기에 곧바로 수크레행 버스를 타고 산타크루즈에 들러 트래킹을 계획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포토시 광산투어나 수크레를 들리지만, 나 역시 그다지 두 곳에 관심이 없었기에 유우니 사막투어만 진행하고 바로 라파즈를 가기위해 그들과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러나 나는 물론, 그들 역시 떠날 수가 없었다. 마을이 본격적으로 파업을 시작했다. 모든 현지인들을 붙잡고 물어봤지만, 대답은 항상 같았다.

'너희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을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이 곳에서 오랜 시간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탈출방법을 알아봐야만 했다. 일단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현지 여행사 '브리사'의 조니를 찾아가 현지 상황을 들어보기로 했지만 이 역시 파업의 여파인가. 브리사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당시 외곽으로 나가는 모든 길을 파업 노동자가 점거하고 있었기에 소금 사막으로 갈 수가 없었단다. 

크게 방법이 없었다. 정보 수집이 우선이라 생각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얻기로 했다. 아베니다라는 유명한 호스텔보다 마나라는 호스텔이 5볼정도 더 비쌌지만 숙소의 질적인 부분에서 비교자체가 불가능했기에 마나 호스텔에 짐을 풀었다. 

'남미사랑'카페에 들어가보니 유우니 파업이야기가 한가득 올라와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은 아베니다 호스텔 40호에 머물고 있으니 정보를 공유할 사람은 오라는 글이 있었다. 댓글을 달고 그를 만나러 숙소에서 나왔다.


당시 세계일주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던 블로거이자 여행자인 스님이 있었는데 나와 비슷한 루트를 한 발 앞서서 여행했기에 그의 블로그를 자주 참고했었다. 그런데 아베니다 40호의 머물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스님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 나혼자 반가웠다. 그 역시 잠비아의 심바형님네서 잠시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니 곧 친근감을 표현했다.

댓글을 보고 연락한 사람은 나까지 포함해서 총 7명, 내일 함께 그룹을 만들어 투어를 진행하는게 어떨지 물어봤다. 나야 완전 고마웠다. 저녁에 모두 모여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기에 다시 연락한다고 하고는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6시부터 야마스테이크를 파는 식당이 문을 열기에 선영이와 민철이와 함께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가격은 아주 저렴하게도 15볼. 거의 공짜나 다름 없었다. 칠레의 물가에서 볼리비아로 넘어오니 숨통이 트였다. 밥, 야채샐러드, 튀김, 메인요리인 스테이크까지. 풍족한 식사를 마쳤다.

스님에게 연락을 해보니 8시에 피자집에서 만나기로 했다기에 가보니 아무도 오지 않고, 나만 왔다. 간단하게 피자를 하나시키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현지인 한명이 조심스럽게 스님에게 다가왔다. 삿갓을 쓰고 도포를 휘두르며 다니는 그의 행색이 주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그에게 사진을 요청하고는 했는데, 이번에 다가온 남자는 그것보다는 조금더 정중하고 예의가 바랐다. 

사정은 이랬다. 스님이 유우니에 왔을 때 길에서 장애가 있는 아이를 만났단다. 아이를 위해 사진도 찍어주고 2~3시간 정도 재밌게 놀아주었는데 그 장애가 있는 아이의 아버지가 이 피자가게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승복을 입고다니니 그 때의 그 사람이 이 사람인것을 알고 말을 걸었단다. 아이의 아버지는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고맙다며 오늘 먹은 피자값을 받지 않겠다고 하였다. 스님이 한사코 그럴 수 없다했지만, 주인아저씨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있는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를 위한 기도를 보는동안, 무엇인가 뭉클한것이 올라왔다. 말로만 떠드는 땡중이 아니라, 사람을 편견과 차별없이 대하는 꽤, 아주 괜찮은 스님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내일 아침 다시 만나기로 하고 숙소로 가려는데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한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며 잠시 얼굴을 보고 가는게 어떨지 물었다. 투어전, 미리 얼굴을 익혀둘겸 만난 그는 대학시절 해외봉사를 같이 다녀온 동생과 똑같이 생겼었다. 그가 볼리비아에 온 줄 알았다. 음료를 한잔씩 마시며 파업의 심각성에 대해 논의를 하다가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2014.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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