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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9, 그리스

유럽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아테네. #1 나, 그대를 만나러 이 곳까지 왔습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7. 17.

첫 유럽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베이징을 경유하여 아테네까지 비행시간만 10시간 이상이었다. 저녁에 비행기를 타면 다음날 아침에 아테네에 도착하기 때문에 스케줄은 완벽했지만, 이제는 20대 초반의 체력이 아니었기에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 아테네에 도착해야만 했다. 

운송수단에 올라타기만 하면 바로 잠이 드는 몸이라 비행기내에서의 잠은 별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베이징에서 환승이 걱정이었다. 새벽 2시 비행전까지 최대한 잠을 자둘 예정이었는데 혹여나 직장인의 생활패턴에 적응된 나의 몸뚱아리가 새벽시간을 최대한의 숙면을 취해야하는 시간이라 생각해버리면 비행기는 그대로 놓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기우였다. 8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달콤한 꿀잠 이후에 벌떡 일어났다.


입국심사소에는 대부분 서양사람이었다. 당연히 EU국가의 사람들일거라 생각하고 짧은 입국심사줄을 기대했지만, 왠걸 대부분이 비 EU국가 사람들이었다. 줄이 어마어마했다. 거의 한시간 이상을 기다린 후에야 입국심사를 마쳤다.


이틀전에 미리 그리스로 가서 여행을 하고 있는 동생과 합류하기로 했다. 구글지도를 켜고 동생이 알려준 숙소 앞에 도착했지만 도저히 입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정확한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 앞쪽에서 물어보면 건물 뒤에 있다고 했고, 건물 뒷편에서 물어보면 건물 앞에 있다고 했다. 

'얘는 뭐 이런 숙소를 잡았나' 속으로 엄청나게 욕을 하다가 결국 다음 블럭에서 입구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더 복잡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숙소였는데 하나같이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었다. 뭐 어디로 가서 왼쪽편에 비밀번호를 치고 들어오라는데 한참 찾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다행히도 와이파이는 연결이 가능해서 동생한테 겨우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짜증부터 냈다.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드냐, 제대로 알려주던가.'

'이것도 못 찾냐, 이정도면 잘 알려준거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나왔다. 에전같았으면 최소의 비용으로 합리적인 식당을 찾는데에 열중했겠지만, 이번 여행은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제 최소한의 돈으로 여행하는 습관은 조금씩 버리기로했다.

여행자 거리 한편에 괜찮은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근처에 연 식당중 먹을만한데는 여기밖에 없었다. 간단한 메뉴와 함께 맥주를 시켰다. 역시 술은, 낮술이었다. 생각외로 괜찮은 수준의 음식과 함께 마시는 맥주는 기대하지 않았던 그리스의 첫 식사로써 성공적이었다.





그리스 아테네하면 누구나 아크로폴리스를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우리의 첫 목적지도 아크로폴리스였다. 

매표소 앞에서 꽤나 고민한 것이 통합입장권을 살 것인지, 개별 입장권을 살지였다. 굳이 유적지 전부를 봐야하나 싶기도 하였고, 대부분의 유적지가 울타리 밖에서 구경이 가능하기에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물론 30유로라는 가격도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만일, 아크로폴리스 입장권이 15유로였다면 주저않고 개별입장권을 구매하겠지만, 애매하게도 20유로였다. 동생과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번 그리스 여행이 내 인생의 마지막 그리스 여행이 될지도 모르니 통합입장권을 구매하고 전부 구경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그대를 만나러 이 곳까지 왔습니다.' 

프로필레아를 지나니 그대가 나타났다. 파르테논 신전은 상상보다 규모가 컸고, 정말 상상외로 카티아티드는 아주 작았다. 심지어 카티아티드는 울타리 때문에 가까이 갈 수도 없어서 더욱 작아보였다. 

알쓸신잡3에서 들었던 배가 볼록한 기둥, 양끝의 좁은 기둥폭, 가운데가 볼록한 지반등도 눈에 들어왔지만, 실제로 보니 그러한 정량적인 건축학적 분석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그 자체로서 바라볼때 진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은 별 감흥중 없었다. 과거 중동 여행중에 압도적인 규모의 반원형 로마식 극장을 많이 봐서 그런듯했다. 울타리 때문에 무대에 서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죽어있는 무대가 되었고, 죽어있는 무대를 만들어놓으니 모든 관람객석은 존재의 의미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벤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더운 날씨에 지쳐버렸다. 뉴아크로폴리스 박물관으로 일단 피난을 떠났다. 

그리스를 오기 전부터 몇가지 책을 보면서 각종 유물에 대해서 간략하게 공부를 하고 온게 큰 도움이 되었다. 입구부터 전시되어있는 각종 도기들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대적 흐름과 그 흐름속에서의 도기 유행을 알고 있으니 재미가 배가 되었다.

아크로폴리스내에서 발굴된 유적들이라 손상이 심했지만 충분히 구경할만 했다. 카티아티드 진품을 구경할 때에는 단체 관광객이 없는 틈을 타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제우스 신전과 올림픽 공원까지 구경하기로 했다. 

제우스 신전은 울타리 밖에서도 충분히 구경이 가능하지만, 안에서 보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굉장한 위용을 뽑내고 있었는데 만일 제우스 신전이 파르테논 신전만큼 남아있었더라면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싶었다. 

안을 둘러보면서 통합입장권을 구매하여 가까이서 구경하는 것이 무조건 합리적인 선택이라 생각했다. 

더운 날씨 탓에 사람들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담벼락에 조르르 앉아있었다. 서양 여자 한 그룹만이 다양한 자세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찌나 요가적인 자세로 사진을 찍는지 나풀거리는 치마가 홀라당 올라가 속옷이 다 보였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 모두 별 신경을 안쓰고 그녀들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올림픽 공원까지 구경을 하고 핸드폰을 확인하여 몇 Km를 걸었는지 대략 11Km정도였다. 동생은 쓰러져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그제서야 피로가 몰려왔다. 동생말에 따르면 잠시 눕는다는 내가 약 1분도 안되어 잠들었다고 했다. 

저녁에는 리카베투스 언덕에 올라 야경을 볼 예정었기에 동생이 깨워줬는데 몇번을 5분만, 5분만 하다가 8시가 넘어서 겨우 일어났다. 그러나 밖은 아직도 해가 한참이었다. 석양을 보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간이라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케밥을 먹고 등산을 시작했다.


인터넷의 글들을 보면 산까지 가는 길이 상당한 우범지대라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으로 말도 안되는 소리같다. 굉장히 값비싸 보이는 옷가게들이 많았으며, 이름을 들어봤을법한 브랜드 가게들도 곳곳에 있었다. 집들은 깨끗했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정상적이며 활기찼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흔적이 있는 곳은 풀이 자라지 않았으니 그 길을 따라 묵묵히 올라갔다. 금세 정상쯤에 도착했는지 앞편으로는 사람들이, 뒷편으로는 아테네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상의 성당안으로 들어가니 예수 그림의 눈이 조금 이상했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일부로 그림을 그리다가 실수를 한 것일까?? 그럴리가... 뭔가 의미하는 바는 있는 것 같지만, 무지한 나는 짐작이 불가능했다.

난간에 걸터서서 사진을 찍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남았기에 야경을 구경할 자리를 잡으려 했지만, 이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내 감동과 사색, 혹은 그와 유사한 다른 감정들을 훼손할 곳이었다. 살짝 산 정상에서 내려와 길 외곽의 자리를 잡았다. 중세 시대 부유한 영주들은 산 꼭대기의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즐기며 야경을 기다렸고, 나 같은 농노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물을 마셨다. 

씨 탓인지 흩뿌리듯 발광하는 붉은 야경은 보지를 못했으나, 어느새 해는 졌고, 길거리에 등이 켜졌다.

신기하게도 불이켜지는 집들이 많지가 않아서 동생과 나는 갖가지 가설을 생각했다.

일을 하러 갔거나, 이 곳이 진짜 우범지대거나, 그리스 사람들은 원래 불을 끄고 생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거나, 이사를 갔더거나, 아주 두꺼운 암막을 쳤다거나.

그러나 이 모든 가설들을 대입하더라도 불이 켜지지 않은 집이 너무나 많았다. 그냥... 그리스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생각하고 넘어갔다.







숙소로 돌아오니 술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내일 산토리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야만 했고, 도저히 체력이 따라오지를 못했다.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회복해야 내일 다시 또 일정을 즐길 수가 있었다. 상당히 터프한 일정이지만 돈, 시간적으로 이게 가장 합리적이었으므로 방법은 없었다.


19. 0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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