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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말레이시아

아기자기하고, 거대하고. 쿠알라룸푸르. #4 믿음이 가지 않는 그에게 돈을 빌려줄 수는 없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4. 21.

늦은 밤까지 쿠알라룸푸르에서 지내야했지만 조급함은 없었다. 되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늦은 저녁 할게 없을까봐 걱정되었다. 그런만큼 게스트하우스에서 뒹굴거리는 시간은 늘어갔다.

약 10시쯤 뒹굴거리는게 지겨워서 바투동굴과 말레이시아 국립 박물관을 가보는 정도의 큰 루트만 세워놓고 밖으로 나왔다.






바투동굴로 향하기 전에 차이나타운 옆에 있던 스리 마리아만 사원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으나, 예배시간에 맞춰 왔는지 안쪽에서 특유의 인도음악이 흘러나왔다. 밖에서 사진을 한장 찍고 돌아가기에는 아쉬워 안으로 들어가는 인도계 사람들을 따라 들어갔다.

여행자로서 인도문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이 곳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곳이었다.

분주하지만 경건하게, 신성한 그들의 예배를 본 후에 바투동굴로 향했다.



바투동굴은 내가 말레이시아를 여행하기로 결정한 이유중에 하나였다. 동굴 자체보다는 커다란 무루간 입상과 깍아지는 절벽같은 계단을 올라 시내를 바라보는 사진이 꽤나 시원스러웠다.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지하철로 이동이 가능했다. 너무나 당연스럽게 우리나라의 지하철 시스템을 생각하고 여유롭지 않게 도착한 역에서 큰 낭패를 겪었다.

2~3분마다 도착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쿠알라룸푸르의 열차 대기 시간은 엄청 길었는데, 빨간색의 1호선은 그나마 자주 운행하는 편이었지만, 바투동굴을 향하는 파란색의 2호선은 약 1~1시간반마다 운행을 했다. 재수가 없게도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 한편이 떠난 상태였다.

1시간이나 공중에 떠버렸다. 특별히 살 것도 없고, 구경할 것도 없는 센트럴 터미널과 열결된 백화점에서 40여분간 시간을 보냈고, 열차 플랫폼에 앉아 30여분을 더 보냈다.


바투동굴 역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는 열차 스케줄을 확인했다. 또 다시 길거리에서 한 시간을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전쟁과 승리의 신인 무루간은 컸다. 확실하게 컸지만, 그 뿐이었다. 세워진지 얼마되지 않은 듯 겉 표면은 너무나 반들반들했다. 거대한 시간을 버텨온 웅장함은 아쉽게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말레이시아에서 꼭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으므로 사진 한 두장을 찍었다.








계단에서 발을 한번 잘 못 딛으면 그건 곧 죽음이었다. 지겹게도 이어지는 계단속에서 한번이라도 현기증을 일으켜 뒤로 넘어진다면 볼링공이 볼링핀을 때리듯이 줄질이 사탕으로 사람들을 치는 대참사가 발생할 듯 했다. 

현기증보다 더 위험해보이는 것은 원숭이였다. 음식물을 훔쳐 가기위해 공격적으로 다가오는 원숭이를 무의식중에 피하다가 중심을 못 잡고 쓰러져도 곧 죽음이었다.

마치 위기탈출 넘버원과 같이 뭐를 하던 죽음과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게 글을 썼지만, 어쨌든 넘어지면 땅바닥까지 데굴데굴 굴러 내려갈 듯 하였다.











적지않은 여행을 했음에도 많은 동굴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굴은 콜롬비아 산힐에서 직접 몸으로 느꼈던 동굴 투어였고, 그나마 규모가 큰 동굴은 베트남 하롱베이 투어때 방문했던 승솟동굴이었다.

동굴안에 건물이 있었던 곳은 바투동굴이 유일하지 않았나 싶었다. 가장 안쪽의 뚫려있는 하늘을 통해 빛을 바라보고서는 절벽같은 계단을 내려왔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주변의 길거리를 쏘아다니며 사람들의 삶의 냄새를 맡아보고 싶었지만, 극악의 열차 배차시간 때문에 이내 마음을 접었다.


나이가 들었는지 어느순간부터인가 국립 박물관은 꼭 여행일정에 넣어놓고는 했다. 간단하게 여행 국가의 역사를 훓어본다고 하여도 박물관 관람의 재미가 배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국립 박물관을 가지 않음은 무엇인가 아쉬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내가 첫날 목숨을 걸고 10차선 대로를 무단횡단 했던 그곳이 바로 국립박물관 근처였다.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날 박물관을 먼저 봤을 것이다.

이를 모르고 한참동안 공원을 빙돌아 박물관에 도착했다.



어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의 고대 유물을 시작으로, 말라카 해협을 통합 아랍과 중국간의 중계무역을 통한 아름다우며 독특한 중세시대의 역사, 지리적 요충지임에 따라 겪은 복잡한 식민시대의 역사, 독립국가로서의 말레이사아 현대 역사까지 나눠 다채로운 박물관 기행이 가능했다.




근현대 박물관 안쪽의 작은 공간을 할애하여 말레이시아 독립에 관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비교적 쉬운 영어 자막 덕분에 내용 파악이 가능했는데,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메르데카'였다.

메르데카는 말레이시아 언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다. 15세기 최전성기의 말라카 왕국 이후에는 포르투칼 - 네덜란드 - 영국의 식민 지배를 당하였으며, 세계 2차 대전 당시에는 어디를 가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던 일본에게도 3~4년간 식민지배를 당했다. 일본의 항복 이후 잠시 동안 또다시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57년 8월에 독립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메르데카'는 큰 의미일 수 밖에 없었다.

약 4~5살 아이를 꼭 손에 잡고 함께 영상을 구경하던 할머니가 30여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함은 그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멀지 않은 곳에 말레이시아 중앙 모스크가 있기에 메르데카 광장을 가는 길에 들렀다. 예배시간을 피해갔기에 사람도 없는 널찍한 공간속에서 차디찬 대리석 바닥을 느끼며 거닐었다. 나에게 모스크란 들러도 들러도 새로움을 느끼게 해줬고, 묘한 이질감도 함께 했다.

관심있게 내부를 구경하다가 예배당 앞으로 가니 가이드가 이슬람과 모스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관심을 보이니 그녀 역시 가속이 붙었는지 한국어로 된 책과 자신이 앉아있던 편한 의자를 내주었다.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해 직간접적인 내용을 기대했지만, 유사과학의 향이 짙게 났다. 그다지 읽어볼만한 책은 아니었고, 여기에 꽂혀있어서 한국인들에게 권해질 책도 아니었다.






메르데카 광장이 보일 무렵 어느 골목길에서 한 남자가 나를 붙잡았다. 그는 다급해보였고, 초조해보였다. 말레이시아계는 확실히 아니었고, 처음에는 화교라 생각했다. 딱 봐도 관광객인 나에게 무슨 볼일이 있을까 싶었다.

초조한 그는 아주 길게 자신이 상황을 설명했다. 내용은 길었지만, 한문장으로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였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50달러를 빌려달라고하니 사기꾼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솔직히 돈을 빌려줄 생각도 없었지만, 과연 돈을 어떻게 갚을지 물어보니 숙소에 가서 비상금을 가지고 올테니 KL센트럴에서 저녁때 만나자고 하였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떠나려하니 자신의 시계를 풀어주며 그럼 이것을 담보로 가져가라고 하였다. 딱 봐도 50달러의 가치는 없어보였다. 같은 여행객으로서 그를 도와줄 수는 있었지만, 정황상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는데,


첫째, 돈을 빌리는 사람이 왜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가.

분명히 걸어서 10분만 가면 메르데카 광장이 나오고, 싱가폴 사람이라는 그는 자국의 사람에게 자국의 언어로 자국의 계좌번호나 신용할 수 있는 정보를 제시하고 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음에도 굳이 이곳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째, 왜 50달러를 빌려달라고 하는가.

소액의 돈으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갈 수 있으며, 굳이 달러를 받아 말레이시아 화폐로 환전을 해야하는 번거로움까지 갖고 있는 달러를 50달러씩이나 요청했을까. 만일 지하철 비용정도만 요구했어도 고민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돈을 주지 않았다. 내키지 않았고, 믿음이 가지 않았다.




메르데카 광장 앞은 도로를 막아 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 뒷편으로는 너른 운동장이 있어서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독립을 쟁취한 후 게양된 영국 국기가 내려진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뚝 서있는 말레이시아 국기만으로도 이 곳이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좌우 대칭이 인상적인 술탄 압둘 사마드를 몇 장 찍고 말레이시아에서의 관광 일정을 마무리 했다.


차이나타운 뒷 골목 간이 식당이 식사를 하기에 아주 좋았지만, 아쉽게도 저녁 무렵에는 장사를 하지 않았다. 근처를 돌아보다가 현지인이 많고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곳에서 나시고랭을 먹었다. 아직 배가 차지 않아 뒷편의 작은 노점에서 미훈이라는 국수까지 먹었다. 

역시 배가 빵빵해야 행복감이 차올랐다.




체크아웃은 해놓은 상태였지만, 사장님꼐 양해를 구하고 샤워를 했다. 1일 2샤워를 하지 않는다면, 몸이 끈적거려 버틸 수가 없었다. 항상 온 몸이 땀에 절어있었다. 히피 느낌이 물씬나는 사장님은 오늘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인듯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는데 체크아웃 후에 샤워를 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보였따.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주 미안한 표정과 동시에 감사한 표정을 가득 담아 인사를 하고 나왔다.


공항으로 가기까지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기에 미리 봐둔 카페에서 커피한잔을 마셨다. 한잔에 3,000원 정도하는 라떼를 시켰는데 종이컵 두잔을 간신히 채울정도의 컵에 담겨나왔다. 말레이시아 물가를 감안한다면 꽤나 비싼 편이었다.

아니, 어쩌면 우리나라 카페의 커피(브랜드 커피를 제외한 일반 동네의 소규모 카페)가 지나치게 저렴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고소한 라떼한잔은 말레이시아에서의 마지막 여유로 충분했다.


201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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