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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8, 말레이시아

아기자기하고, 거대하고. 쿠알라룸푸르. #3 모스크의 한을 풀고 싶었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4. 7.

어제 짬짬이 말라카 구시가지에서 버스터미널까지 어떻게 갈지 고민을 했다. 구글지도로 검색해보니 아침 9시 30분쯤에 구시가지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한대 있었지만 확실치는 않았다. 최대한 쿠알라룸푸르에 일찍 도착하고 싶었기에 시간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그랩을 이용해서 버스터미널로 가기로 했다. 동남아권의 생활 문화 양식을 크게 바꾸고 있는 어플리케이션이 바로 이 '그랩'이란 어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현금 사용에서 신용카드 사용을 건너뛰고 QR코드를 이용한 인터넷 결재로 진입한 것과 비슷하다.

그랩 어플을 이용하여 택시를 호출하자마자 기사님이 왔다. 


쿠알라룸푸르까지의 버스비는 거의 비슷했다. 눈에 보이는 곳에서 9시 출발 버스표를 구매하고 4번 플랫폼에 앉아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느낌이 불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티켓 창구 직원에게 물어보니 덤덤하게 플랫폼 1번이라 하였다.

급하게 뛰어가 버스에 올라타니 내가 마지막 승객이었는지 곧바로 출발을 했다. 버스를 놓칠뻔 했다.

어찌나 버스를 그리도 잘 선택하는지 버스는 줄지어 있던 버스중에 가장 허름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Pasar seni역의 차이나타운 근교에서 지내기로 했다. 저렴한 식당과 숙소가 밀집해 있을 것 같았고, KL센트럴역에서 한정거장만 가면 되었으니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아주 좋았다.

지도를 보니 충분히 걸어갈만한 거리라 근교 지리를 익힐겸 KL센트럴에서 Pasar seni까지는 걸어가기로 하였다.

큰 호텔에 가로막혀 길을 못 찾는 동안 한 할아버지 식료품을 한가득 들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누가봐도 장을 보고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다.

역시나 내 판단은 맞았다. 그는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경비원을 통과해 지나갔고, 나는 경비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자그마한 샛길의 위치를 얻었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샛길을 통과하니 왕복 10차선은 되어보이는 도로가 나왔다. 누가봐도 무단횡단을 하면 안되는 곳이었지만, 차가 없는 틈을 타 전력질주로 건너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역시나 차이나타운 답게 각종 짝퉁이 난무하는 시장안에 저렴한 숙소들이 보였다. 그러나 저렴한 방은 남은 자리가 없었고, 남는 방은 대략 60링깃정도부터 시작을 했다. 약 30~40링깃정도의 수준을 생각했던 나에게는 예상외의 가격이었다.

끈기를 갖고 약 3~4 블럭을 돌아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히피 냄새가 풍기는 주인아저씨도 마음에 들었고, 30링깃의 저렴함, 나 말고는 투숙객이 없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제외한다면, 이슬람 성지는 가보지를 못했다. 중동의 정세가 워낙 불안하기도 하고, 메디나,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바이는 여행객으로써 단신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운 나라였다.

이번 말레이시아에서 모스크의 갈망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쿠알라룸푸르 푸트라자야에 있는 푸트라모스크, 일명 핑크 모스크를 최우선의 목적지로 결정했다. 다른 곳은 못가더라도 여기만은 다녀오야겠다는 일념이었다.



푸트라자야 역에서 버스를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그랩을 이용해서 갈 생각이었다. 버스시간을 확인하러 가니 낮 3시에 푸트라자야 투어 버스가 운행된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혹시나 하여 근처에 어슬렁거리니 버스 운전수 혹은 관련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투어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는데 무려 가격이 '50센트' 였다. 단돈 50센트만 내면 푸트라자야 전부를 투어시켜주겠다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2시 50분쯤 가이드 아저씨는 없고, 버스는 정차되어있었다. 1링깃을 주고 여행자 명부를 적고 있는데 1링깃을 돌려주면서 50링깃이라 이야기했다.

뭐지... 나 호객당한건가 싶었다.

벌써 3시가 다된 상황에서 시간을 지체하기도 힘들었다. 고민을 하는데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두사람이 탑승하면서 자연스럽게 50링깃을 지불했다.

아까 마주친 가이드를 찾아봤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50링깃을 냈다. 4시부터는 모스크에 입장이 불가능했기에 지금은 출발을 해야만 했다. 뭔가 당한 느낌을 안고, 창문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버스앞에 줄을 섰다.

직감적으로 저게 모스크가는 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차하여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푸트라자야 모스크를 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핑크모스크만 보면 됬기에 50링깃을 환불받았다. 혹시나 버스안에 탑승해잇는 한국인들에게 모스크만 가는 것이면 다른 저렴한 버스가 있다고 얘기해주었으나, 그들은 투어를 할 예정이라 하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티켓창구에서 버스카드를 구입하고는 버스에 탔다

곧 3시가 되었고 투어버스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준비하는데 누군가가 큰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왔다. 아까 나한테 시간과 금액을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는 가이드도 운전기사는 더욱더 아니었다. 그냥 일반 여행자일 뿐이었다. 헐래벌떡 버스에 올라타더니 버스는 출발했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저들은 곧 내릴거라고. 역시나 버스가 한 5미터를 가자마자 버스가 섰고, 그들은 내렸다. 0.5링깃은 도대체 어디서 듣고 온건지 알수가 없었다.

그들이 버스티켓을 사온 후에 푸트라자야 모스크행 버스는 떠났다. 이 두명의 아저씨는 무척 재밌었는데 옆에 사람만 보면 무조건 말을 걸었다. 나와는 자리가 좀 떨어져있었는데 목소리가 우렁차서 그들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며, 둘중의 한명은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 옆에서 듣는 젊은 말레이시아인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떠들었다.


4시부터 핑크모스크의 예배시간이기 때문에 안으로 입장이 안되는데 버스는 이상한 방향으로 돌았다. 우리나라 세종특별시와 같은 정부청사 특화 도시라 주말에는 도시에 사람이 없다하였는데, 정말 길거리에 개미 한마리 안보였다. 화창한 날씨에 번쩍번쩍한 예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도시가 차가웠다.

3시 30분쯤, 푸트라자야 모스크앞에 도착했다. 푸트라자야 모스크의 위용보다 먼저 놀란게 심각한 주차난이었다. 모스크 앞의 원형 로터리는 주차를 위한 차들과 관광객을 실어나르기 위한 차들이 뒤엉켜 엄청난 주차난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이 수많은 버스사이에서 이따 돌아갈 버스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모스크 가드가 어찌 알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했다. 조금 젊은 친구는 빅뱅의 '뱅뱅뱅'을 아냐며 물었다. 경직된 분위기의 경건한 모스크로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기에 해리포터 망토를 빌려입었다. 상당히 두껍고 무거워서 입기가 거북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모스크 내부의 핑크색이 시선을 압도했다. 아주 정교한 원형돔 문양의 한참동안이나 시선을 빼앗겼다. 한쪽에는 각국의 언어로 이슬람에 대해서 설명하는 팜플렛들이 붙어있었는데 이슬람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보였다.

떠나기전, 사진을 한장 찍고 싶었다. 아까 '뱅뱅뱅'가드와 눈이 마주쳐 사진을 한장 부탁하니 무릎까지 꿇고 열심히 찍어주었다. 서양놈들보다는 사진을 훨씬 잘 찍었다. 과거 여행중에 페트라에서 찍은 사진만 생각하면 아직도 분통이 터졌다.


4시에 맞춰 밖으로 나와 총리집무실에 들렀다. 대학교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평생 한번있을 그들의 졸업 축하 사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멀리서 사진을 한장 찍고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문제는 돌아가는 방법이었다. 올때 탄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생각했지만, 알 수 없는 버스 배차 시간과 수많은 관광버스, 일반버스중 과연 내가 탈 버스를 구분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한명도 안 보였다.

다행히도 모스크 앞에서는 공용와이파이가 열려있었기에 구글지도를 이용해 버스를 확인해보았다. 약 15분후 모스크 건너편에서 버스를 탈 수 있다는 정보를 믿고 건너편으로 급하게 뛰어갔으나 15분은 커녕, 3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무작정 기다리기에는 무모하여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버스정보를 알아보고 너무 늦거나 정보를 모른다고 하면 그랩을 이용해서 돌아가기로 했다.

문제는 인포메이션에 들어가기 전에 해결되었다. 나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 대부분이 근처 천막밑에서 뜨거운 태양을 피고 있었다. 왠지 그들은 돌아가는 시간을 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두사람도 아니고 이 많은 인원들이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고, 그들을 따라 버스에 탈 수 있었다.


낮의 일과를 마무리 짓고 숙소에서 쉬다 해가 질 무렵 다시 나왔다. 목적지는 페트로나스 타워였다. 트램을 타고 내리면 짠하고 타워가 보일 줄 알았지만, 꽤 걸어야지만 트윈타워의 모습이 보였다.

근처에 도착했을때 수 많은 택시들중 눈에 띄는 택시가 있었다. 앞, 뒤, 옆 유리창 가득 갖가지 스티커와 부적, 인형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택시였는데, 어떻게 운전을 하나 싶을정도로 심각했다. 신기하고 재밌는 마음에 사진을 한장 찍었는데 갑자기 택시 문이 열리더니 나를 향해서 운전기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인듯 하였는데 딱 봐도 페트로나스 타워나 찍을 것이지 왜 나를 찍냐는 것 같았다. 사진 찍히는 입장에서 기분이 나쁠 수 있기에 바로 뛰어가 사과를 하고 그가 보는 앞에서 사진을 지웠으나, 계속 소리를 지르며 개거품을 물었다.

열이 받았다. 내가 무슨 범법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뛰어가서 사과도 하고, 사진도 지웠으면 용서해줄만 하지 않은가.

한국말로 쌍욕을 날렸다. 옆에서 간식을 파는 청년이 싸움을 중재시켜 택시기사가 먼저 떠났고, 나도 자리를 떴다.





더러운 기분으로 페트로나스 타워를 봐도 멋있었다. 확실히 쿠알라룸푸르를 대표할만한 건축물의 위용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페이의 101타워보다 더 멋있었다. 뒤쪽에 조성된 공원에서는 라스베가스처럼 분수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시간이 조금 늦었는지 금세 분수쇼가 끝나 널찍한 공원을 한바퀴 돌고는 숙소방향으로 걸었다.

쿠알라룸푸르 사람은 여기 다 모여있는지 잘란알로 야시장내의 엄청난 수의 가게 앞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음식을 먹으려 했는데 혼자서 먹기에는 상당히 애매한 음식들을 팔고 있었다. 그저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를 한 잔 마실 생각이었는데 난감했다.

결과적으로 요리를 시켜먹지는 못하고 약간 외곽에 있는 간단한 밥을 파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테이블이 몇 개 없어서 아랍계열의 사람 한명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밥을 먹다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말 그대로 외국인 노동자였다. 자기 말로는 UN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했는데 전체적인 느낌이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는 한국에서 엄청 일을 하고 싶어했다. 우리나라에 와서 일을 하면 2,000달러 이상을 벌 수 있냐는 말이 사실인지 물어봤다. 이 곳에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그는 나에게 음료수 한잔을 사줄것을 부탁했다. 그다지 비싸지 않아 음료수를 하나 사주니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어찌나 말레이시아계 사람들을 무시하는지 게으르며 멍청한 사람들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물론 중국 화교 사람들은 똑똑하다는 말도 함께 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중국 화교가 차지하고 있는 경제적 입지는 말레이시아계 사람들보다 뛰어남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서슴없이 말을 하니 뭔가 거부감이 들었다.

그의 기나긴 인생사를 다 들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내가 떠날때까지 내가 사준 음료를 흔들어대면서 고맙다고 소리쳤다.

아다닐만큼 돌아다녀 다리가 아팠다. 빨리 숙소에 돌아가 맥주 한잔을 시원하게 마시고 싶었다. 생각외로 비싼 맥주 두병을 들고 빵빵하게 터지는 와이파이로 넷플릭스 영화를 한편을 보니 피로가 풀렸다.


2018.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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