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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시아

라오스 방비엔. #12 액티비티의 천국 암벽등반

by 지구별 여행가 2015. 7. 16.

아침에 연락을 해서 형과 누나를 만났다.

 

형은 전문 산악인, 누나는 준산악이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등반하는 사람들 말이다. 둘은 암푸1 이라는 곳의 등반을 끝내고 태국과 라오스로 여행을 왔다했다. 형은 산악계에서 상도 타고 잡지에도 자주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산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라오스 이후에 네팔을 갈 예정이었기에 에베레스트와 안나푸르나에 대해 여러가지 물어봤지만 너무나 전문가적인 대답이 나와서 당황했다. 누군가에게 난이도를 물어봤을 때 일반인이 '쉽다' 혹은 '어렵다' 이야기 하면 대충 감이 오지만, 전문가가 '쉽다'라고 표현하니 '쉽다'라는 기준이 어디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독한 등반가'.

 

그에 비해 누나는 말 수도 더 많고 활기찼다. 이번 암푸1 베이스캠프에서 무전으로 긴급사황을 대비하는 역할을 했다. 산마다 다르지만 베이스캠프라해도 보통 해발 4000m이상은 되기 때문에 절대 쉬운 일은 아니다. 직업은 글을 쓰고 아동 서적 편집자로 일한다 했고 취미는 등산과 암벽등반이었다.

 

둘은 그다지 태국과 라오스 관광에는 흥미가 없었다. 주로 명산 등반과 암벽등반이 목적이었다. 해발 6800미터의 산을 다녀와서도 또 다시 산을 등반하는 일은 정말 산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족히 60리터는 되보이는 배낭에 암벽등반 로프를 비롯한 암벽등반 장비들이 가득했고 여행가이드북이 아닌 암벽등반과 명산들이 소개되어 있는 책을 들고 다녔다.

'산을 등반하고 휴식 겸 여행을 왔는데 다시 산을 가고 싶냐' 물어보니 이것은 다른 종류의 산이란다.

 

형과 누나는 장비가 다 있으나 나는 장비가 없기 때문에 암벽등반 신발과 허리벨트만 빌렸다. 등반을 하러 들어가면 점심을 먹으러 나오기 힘드니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출발했다. 약 20여분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강이 하나 나왔다. 암벽등반 포인트인지 강을 건너게 해주는 나룻배가 건너편에 정박중이었다. 뻐끔뻐끔 담배를 피고 계신 아저씨를 부르니 천천히 배를 끌고 우리쪽으로 왔다. 강을 건너 암벽등반을 할 암벽을 보니 '직각'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등반인데 이걸 어찌 올라가나 싶었다.

 

나를 위해 형과 누나는 쉬운 코스부터 시작했다. 암벽등반 책자를 보더니 이 정도 난이도는 남자라면 올라갈 줄 알아야 한다며 한 암벽을 선택했다. 형이 먼저 올라가면서 안전로프를 설치하면서 올라갔던 길을 기억해서 대충 더듬어 발을 뗐다. 밑에서 형이 빌레이 역할을 해주었는데 형의 손이 미끄러지거나 실수를 하거나 뭔가 잘 못되서 떨어지면 머리통이 박살난다는 생각을 하니 집중이 되지 않았다. 손을 3~4번 짚고 떨어졌다. 형은 내가 겁먹은 걸 알았는지 걱정말라며 자신을 믿고 끝까지 올라가라 했다.

떨어지면 죽기 밖에 더하겠냐는 생각에 집중해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 끝 발 끝을 더듬어 공간을 찾아나갔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민감하게 벽을 더듬었다. 집중을 하니 속도도 빨라지고 돌틈을 더욱 빠르게 찾았다. '등반 성공'

 

형은 조금 더 어려운 코스를 가보자며 다른 암벽으로 갔다. 가서 보니 이건 뭐 직각이었다. 돌들도 맨들맨들해 보여서 손 끝과 발 끝을 넣을 틈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형은 마치 사다리를 오르 듯 올라갔다. 아까보다는 어려운 코스니 누나가 먼저 하고 그 길을 따라 내가 해보기로 했다. 취미로 암벽등반을 한다는 누나 말은 사실이었다. 정말 잘 올라갔다.

 

내 차례다. 눈으로 아까 형과 누나가 올라갔던 길들을 확인 한 후 등반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출발 하기 전 봐두었던 표시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무리 손을 더듬어도 보이지 않았고 발은 지탱할 곳을 잃고 허둥댔다. 다리 고정이 안되 팔힘으로 버티니 팔이 금방 부들부들 떨렸다. 결국 놓쳤다.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려 밑에서 형과 누나가 코치해주는 돌틈을 차근차근 살피고 다시 올라갔다. '등반 성공'

 

그 이후에도 3개 정도를 더 했다. 초보자에게는 난이도가 있는 편이라 했다.

하나는 등반 성공, 다른 하나는 중간에 팔힘이 빠져서 포기, 마지막 하나는 처음부터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몇 번 짚지 못하고 포기했다. 누나는 3개를 다 등반하는데 성공했다. 아무리 힘이 빠져도 공중에서 대롱대롱 메달려서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올라갔다. 떨어지면 다시 떨어지면 또 다시. 그렇게 끈질기게 등반을 성공시켰다. 정말 멋진 여자였다. 누나의 근성을 보고 다시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남아있는 팔힘이 없었다.

 

 

 

해가 떨어지기 전 마을로 출발했다. 올 때는 도로를 따라왔지만 이번에는 밭을 가로 질러 갔다.

형은 어제 방비엔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을 만났는데 그 분이 알려준 방비엔 국수 맛집을 찾아갈 거라면서 같이 가자 했다. 나 또한 국수를 엄청 사랑하기 때문에 군말 없이 따라갔다. 방비엔 중심지에서는 약간 외곽에 있는 식당이었다. 좋아하는 고수를 한 움큼 넣어 먹으니 고수의 향이 짙게 베어 정말 맛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간단히 맥주를 한잔하고 형, 누나와 헤어졌다.

 

 

 

 

 

 

 

마지막에 등반한 암벽.

 

 

 

 

숙소로 돌아오니 형은 없었다. 형은 오늘 사우나를 간다 했었다. 무슨 사우나인가 싶었지만 라오스 사우나를 꼭 가고 싶다고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 8시쯤 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아 '사우나 참 오래도 하네' 생각하며 누워 뒹굴뒹굴거리는데 형이 들어왔다.

 

형은 사우나에서 한국사람 몇 명을 만났단다. 그들이랑 같이 맥주를 한잔 하자면서 나를 불렀다. 형 말고도 라오스 사우나를 찾는 한국사람이 있다는게 약간은 놀라웠다. 어차피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 싶어 따라가니 옆 게스트하우스에 한국 사람 10명정도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앉아있었다. 나와 형을 제외하고 4명 정도가 자유여행으로 온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었고 나머지는 부모님 나이뻘의 부부동반 여행인듯 보였다.

 

시간이 늦어질 수록 어른들은 먼저 숙소로 들어갔다. 밤이 늦어 할게 없으니 근처 술집으로 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모든 술집들이 일찍 문을 닫혀있었다. 이리저리 방황을 하는데 한국인이 한다는 술집이 있어서 마지막으로 그 곳으로 가보았다.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늦은 시간이 오래는 못 마실거라 이야기했지만 그리 많이 마시지 않을 것이라서 상관없었다. 나와 형을 제외한 4명 중 2명은 자매고 1명, 1명 따로 온 사람들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일정상 내일 다 같이 루앙프라방으로 간다했다.

 

어차피 늦은 시간 오는 손님도 없으니 주인 누나도 우리 옆에 앉아 같이 여행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 한쪽에 있는 기타를 발견하여 누나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것이라 하였다. 한곡을 청하니 기타를 치며 노래를 들려줬다. 자신의 자작곡이라 했는데 정말 노래를 잘 불렀다.

 

노래 소리, 기타 소리. 또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이야기

 

2015/07/17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라오스 팍세. #13 우연히 초대된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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