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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7, 대만

난생 처음 둘이. #5 뭐가 그리도 서운했던 것일까.

by 지구별 여행가 2017. 11. 26.

아침부터 짜증이 났다. 보이스톡으로 계속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설명을 해주었지만 전혀 일이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공동공간의 컴퓨터 앞으로 가서 네이트온을 다운 받았다. 보이스톡을 다시 켜서 원격조정까지 연결을 하여 업무를 처리해주었다. 만일 화상통화였다면 짜증과 귀찮음이 절정에 달한 내 표정이 고스란히 보였을 것이다. 고작 5분만에 일을 처리했지만 마치 50분은 일한듯 피곤하였다.


이 때문일까 동기에게 살짝 짜증과 실망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은 아니었다.

일요일날 타이난에서 급하게 환전을 한 100달러는 이미 모두 써 버렸기에 마지막 환전을 할 필요가 있었다. 허나 동기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 1층 침대에서 축구 동영상만을 보고 있었다. 굳이 같이 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뭐랄까 전혀 여행에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순간의 묘한 감정이 뒤섞여 약간의 짜증으로 변해있었다.

혼자 밖으로 나와 환전을 하러 은행을 몇 곳 들렀다. 사설 환전소를 찾아서 좋은 환율로 환전을 하고 싶었지만 사설 환전소가 보이지 않았다. 숙소 앞 은행은 환전 수수료에다가 추가로 2%의 수수료를 받는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 굳이 이런 곳에서 환전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은행을 나와 수수료를 받지 않는 은행에서 환전을 마무리했다. 

그는 여전히 축구동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그에게 환전을 해왔으니 돈을 나눠갖자고 이야기를 했다. 약간 미안해하는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후에는 일정을 나눠 따로 돌아다니고 저녁에 타이페이 101타워 앞에서 어제 예스진지 투어를 한 여성을 만나 스린 야시장을 가기로 했다. 내가 먼저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디 딱히 갈 곳을 정한 것은 아니었기에 일단 지도상에서 북쪽을 향해 올라갔다가 외곽쪽 길을 거쳐 101타워로 가는 루트를 정했다.

자그마한 현지시장을 가니 식재료들을 파는 곳들 사이에서 엑세사리를 파는 가게가 보였다. 머리띠도 팔고 있었는데 동기가 생각났다. 타이난에서 산 머리띠가 부서져서 섭섭해하고 있었다. 하나 사갈 마음으로 둘러봤지만 너무 여성스러운 것들 밖에 없어서 결국 구매는 하지 못했다. 그저 아무런 무늬도 없는 검은색 머리띠만 있었어도 바로 구매했을텐데.


나는 여행중에 군것질거리들을 그다지 사먹지 않지만 이날만은 달랐다. 조금 여유롭게 돈을 쓰고 싶었다. 지나가다가 발견한 가게에서 아이스티를 하나 사먹고 맛있어보이는 빵집에 들어가 빵도 사먹었다. 사진을 하나 찍어 동생에게 2리터짜리 생수가 아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료를 보여주니 한참을 웃으면서 맛있는 것도 좀 많이 사먹으라는 연락이 왔다. 허나 나는 2리터짜리 생수병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긴했다.

비가 내렸지만 어디가서 피해야할 만큼 내리지는 않았다. 살짝 비를 맞으면서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현지인들은 두손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어다녔다.


지도로 101타워까지의 거리를 보니 얼마나 빙 둘러왔는지 지금부터 직진으로 쭉 가야만 약속한 시간에 도착할 듯 하였다. 그래도 중간에 공원에서 자신이 기르는 개에게 휘둘려다니는 할아버지도 만나 피식 웃음도 흘렸고, 쿵푸를 배우는 아이의 진지한 눈빛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나 놓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었다.

어느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이 곳이 국부기념관이었나보다. 타이밍이 좋게도 근위병 교대식을 잠시 볼 수 있었다. 단체 관광객 두팀이 교대식을 보려고 왔는지 후다닥 사진을 찍고는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굳이 근위병 교대식을 보러 오지 않더라도 주변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있으므로 한번씩 들러 산책을 하기에 좋아보았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가,

'이럴때가 아니지. 약속시간에 늦겠다.'







타이페이 101타워 앞의 LOVE 글자 앞에서 모두를 만났다. 어제 같이 오랜시간을 여행했기에 어색함은 없었다. 둘은 101 타워를 좀 더 구경후 스린으로 가기로 했고, 나는 샹산에 올라 타이페이의 야경을 보고 출발하기로 했다. 시간적으로 여유는 없었기에 거의 뛰어가도 싶이 샹산에 올랐다. 얼마나 계단이 많은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너무 늦으면 먼저 스린 야시장을 간 둘에게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있는 힘것 올랐다. 시간이 촉박하여 맨 위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바로 뛰어내려왔다.









지하철을 타고 스린야시장으로 갔는데 어찌된 일인지 아직 둘 다 스린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일이 있었나 싶어 물어보니 그저 배가 고파서 함께 저녁을 먹고 출발을 하였단다. 먼저 야시장 안으로 들어갔다가 만나지 못할까봐 지하철역 입구에서 서성이니 곧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스린 야시장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다. 거대한 포장마차를 생각한 나의 모습과 달리 신식 건물들 안에 입점해있는 가게들이 대부분이었따. 먹기로보다도 옷이나 잡동사니를 파는 가게가 더 많았다. 너무 깔끔해서 보는 재미가 없었다.

그다지 구경할만한 것이 없었기에 크게 한바퀴 돌고는 맥주집에서 맥주를 한잔씩 마시고 헤어지기로 했다. 안주를 시키지 않고 맥주만 마시겠다고 하니 종업원이 엄청 눈치를 줬지만 그렇다고 저녁을 먹은 둘과 이것저것 주워먹은 나 역시 음식을 시켜먹기에는 배가 불렀다. 거기다가 함께 온 여성은 에어비엔비 숙소를 이용하고 있었는데 외곽에 자리 잡았기에 늦은 시간에 돌아가기가 겁이 난다하여 일찍 들어가야만 했다.

셋이서 간단하게 맥주를 한병씩만 마시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맥주가 한 잔 더먹고 싶은 마음에 나는 타이완 맥주를, 동기는 코카콜라를 하나씩 구매했다. 마지막 밤이라고 별다를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의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조금은 서로 서운한게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둘이 함께 여행하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나의 여행스타일에 미안함을 이야기했고, 그는 이해해줬다. 그 역시 약간의 의존적임과 적극적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서 아쉬움과 미안함을 이야기했다. 

남자 둘이 얼굴보고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할 수 있었지만, 물 흐르듯 지나갔다. 한 병만 사온 맥주가 아쉬웠지만 내일 오전 일찍 공항으로 가야했기에 대만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의 이야기는 그만 마무리지었다.


2017. 05.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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