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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9, 일본, 히로시마

그들은 아직 배움이 부족하다. #2 배움은 부족하며, 반성은 더더욱 부족하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9. 3. 10.

히로시마 왕복 비행기 스케줄은 최악에 가깝다. 2박 3일로 여행을 간다면 실제로 관광을 할 수 있는 날짜는 하루밖에 되지가 않기에 오늘 히로시마성, 원폭 평화 기념관, 미야지마를 다녀와야만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원치는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히로시마 여행을 결정한 결정적 사진 한장이 '원폭 투하 당시 계단 같은 곳에 앉아있던 사람의 흔적'이라는 사진이었다. 당연히 원폭 박물관에 전시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박물관 본관이 리모델링 공사중이라 보지 못했다. 어쩌면 원폭 박물관 내부에 있는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 들었다.






박물관 내부 구경은 오래걸리 않았다. 본관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구경한 동관에서만큼은 자신들의 원폭 피해로 인한 아픔만 구구절절 적어놨다.

그들의 이야기속에 전범국가로서의 자신들이 동아시아에 저질러왔던 만행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아직 그들은 배움이 부족했고, 반성은 더더욱 부족했다. 역겨운 마음에 박물관을 빠져나오는데 문뜩 이런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가 베트남전 파병을 했을때, 우리는 어떠한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과연 나는 베트남전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는가.' 

'어쩌면 베트남인들도 당시 베트남에 군인을 파병했던 우리에게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일본인들이 학교에서 제대로된 역사 교육을 배우지 못하여 전범국가에 대한 의식이 무지하다는 생각은, 또 다른 누군가가 볼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

평화공원 내의 몇 개의 기념동상들을 보고 원자폭탄 투하 당시 희생된 한국인을 추모하는 추모비를 찾으니 한국계 일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성스레 예를 올리고 있었다. 그가 잠시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 또한 예를 올렸다.





히로시마 성은 멀지 않았다. 일본의 대표격 성인 오사카성을 보지는 못했으나, 사진상으로는 비슷한 느낌이라 이 곳에서 대리만족을 하기로 했다.

일본의 전통적인 성답게 해자를 지나서 들어가면 예상외로 귀여운 히로시마 성이 나왔다. 건물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듯 하였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벌써 1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약 1~2시쯤 미야지마섬의 썰물 시간이었기에 바닷물이 빠진 도리이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 12시에는 출발해야했다. 

전차의 역 근처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으나 마땅히 원하는 메뉴도 없었다. 3~4블럭을 걷다가 적당한 규모의 라면집에 들어섰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식사를 하기 좋아보였다. 대표메뉴로 보이는 라면 하나와 밥을 주문했다.

일본의 라면집에 들어서면 우렁차게 주문을 주방장에게 알려주는 목소리를 좋아했고, 들은 주문을 똑같이 따라 말하는 주방장의 목소리도 좋아했다. 일본식 특유의 감성이라면 감성이랄까. 나는 이 점이 좋아 항상 라면집을 방문하고는 하였다.

맛은 엄청 뛰어나지도, 엄청 뒤쳐지지도 않는 평범한 라면집이었다.

미야지마로 향하는 전차를 타기 전 아주 자그마한 오꼬노미야끼집을 발견했다. 저녁식사를 한 후에 이 곳에서 맥주를 한잔 하기로 결정하고 전차에 올라탔다.




1시간동안 꿋꿋하게 챙겨간 '먼 북소리' 책을 읽고, 약 10여분간 페를 타니 저 멀리 붉은색 도리이가 보였다. 점점 미야지마에 가까워질수록 도리이 앞의 점으로 표시된 사람들의 형체가 나타났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향한 도리이는 사진에 비해 압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물이 완전히 빠진 상태가 아니라 도리이를 만져보기도 힘들었다. 몇몇의 여행자들이 양말을 벗고 도리이까지 갔지만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러니까, 그정도의 수고를 할 느낌을 얻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다이쇼인 사찰은 미야지마를 방문하는 사람이 꼭 방문했으면 할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사찰의 지하로 통하는 자그마한 계단을 내려가 커텐을 열어보니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기에 살짝 겁이 났고, 신성한 무언가가 진행중이라 여행객이 들어가는게 엄청난 실례는 아닐까 고민했다.

계단을 다시 올라와 고민하는데 외국인 두명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 역시 커텐을 열어보고는 적잔히 당황한듯 계단위의 나를 쳐다봤다. 서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함께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자그마한 불상 그림들이 전시되어있었는데 정말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나를 뒤따라오던 어린아이는 엄청난 고음의 비명을 질렀다. 






미야지마 선착장에서 지도를 한장 구할 수 있는데 생각보다 섬의 규모가 커보이지 않았고, 트래킹 코스가 잘 정비되어 있는 듯 하였기에 길을 따라 트래킹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밀물의 도리이까지 보고 갈 생각이었기에 약 3시간 정도 할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이 지도 만든놈을 잡아 죽여야한다. 지도에서 보면 정말 짧은 코스의 트래킹 코스로 보이는데 편도 한 2Km이상은 되는 듯 했다. 완만한 트래킹 코스도 아니고 죽으라고 계단을 올라가야하는데 정말 끝이 안보였다. 최소 5시 전에는 이쓰쿠시마 신사로 돌아와야 입장이 가능했기에 빠른 걸음으로 무리를 했다. 

사람도 없는 트래킹 코스를 걸으며 혼자 수없이 욕을 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가야만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한 아주머니가 슬리퍼를 신고 힘든 기색도 없이 걷고 있었다. 내 체력이 이다지도 저질이 되었나 싶었다. 

페리를 타기 전 간식으로 산 삼각김밥을 하나 먹고 다시 부지런히 걸었다.

두툼한 잠바 덕에 옷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땀을 식히려고 옷을 벗으면 추위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 감기에 걸릴듯 하였고, 옷을 입고 있으면 다 젖은 축축한 옷 때문에 너무나 찝찝했다.




걸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겨우 전망대에 도착했다. 경치하나는 일품이었다. 바다와 산과 도심의 어우러짐은 언제봐도 멋스러운 풍경이었다. 허나 풍경과 사랑에 빠질 틈도 없이 추위에 몸은 떨렸고, 이쓰쿠시마 신사가 문을 닫을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저질의 체력을 탓하며 내려갈 때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려했지만, 3월까지 공사중이라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문구를 보고는 걸음을 돌렸다. 시큰거리는 무릎을 부여잡고 이쓰쿠시마 신사로 돌아왔다.










미야지마 신사를 구경하는데에는 채 10여분이 걸리지 않았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양 옆으로 길게 뻗은 다리를 제외하면 그다지 구경할 것도 없었다. 밀물이 들어와 신사 바닥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렸더라면 또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그러기엔 입장 마감시간이 너무나도 일렀다.

사진 몇장을 찍고 5층 석탑을 구경후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해가 지기를 기다렸으나, 추위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근처 스타벅스 카페에 앉아 언 몸을 녹였다.







시간이 어느정도 흘러 밖을 보니 애매하게 해가 지고 있었다. 이쓰쿠시마 신사 앞으로 가서 사진을 몇장 찍고는 페리에 올라탔다. 완전히 해가 진 후에 출발한다면 히로시마 시내에 도착했을때 너무 늦은 시간일듯 하였다.




히로시마에서 유명하다는 츠케멘, 매운 소스에 차가운면을 담궈먹는 면, 을 먹으러 갔지만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찾아간 가게도 인터넷에서 맛있다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었지만, 가성비를 비교해본다면 1,000원짜리 팔도비빔면이 더욱 만족스러울듯 했다.




낮에 발견해둔 오꼬노미야끼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간 내가 여행했던 교토, 가고시마에서 찾던 자그마한 술집이었다. 앉을 수 있는 자리는 고작 4자리 밖에 되지 않았다.

오꼬노미야끼라는 음식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저 일본식 부침개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이 곳에서 처음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부침개 부치듯 뚝딱 나올거라고 생각하고 맥주를 시켰는데 오꼬노미야끼가 완성되는 것을 기다리기까지 500ml 맥주를 다 마셔버렸다.

맥주를 하나 더 시키고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데 병따개 비슷하게 생긴 뭉뚝한 날이 있는 도구만 하나 주었다. 대충 감으로 이것으로 짤라 먹으라는 이야기라는 건지는 알겠는데, 뭘로 주워먹으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로앞 요리사겸 사장겸 서빙담당에게 젓가락을 받았다. 한참 잘 먹고 있는데 옆 사람의 오꼬노미야끼가 나와서 힐끔힐끔 어떻게 먹는지 쳐다보니 병따개 같은 걸로 자르고 그걸로 퍼먹었다.

'아... 이게 비빔밥에 야채 따로, 고기 따로, 밥 따로 먹는 외국인으로 보이는건가..'

그러나 맛만 있으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젓가락으로 잘 주워먹었다.


맥주 두잔을 마셨으니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고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워서야 하루종일 고생한 퉁퉁부운 다리가 쉴 수 있었다.


2019.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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