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방송 된 이후 방비엔은 사방천지에 한국인들이 있다고 한다. 방송을 보지는 못하여서 어떤 곳들이 나왔는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라오스를 갔다왔다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꼭 묻는 곳이 있다.
'블루라군'. 물론 나도 다녀왔다.
형과 나는 방비엔에서 다른 곳은 안가도 블루라군만은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했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그 푸르른 강물 사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어제에 숙취 때문에 머리는 좀 아팠지만 눈을 뜨자마자 블루라군을 가기 위해 자전거 렌탈샵을 찾았다. 그러던 중 태국에서 잠시 만났던 형과 누나를 만났다. 서로 계획된 일정이 있었기에 저녁 7시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자전거 렌탈샵으로 갔다.
나는 자전거를 빌렸다. 가격은 25000킵으로 다른가게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였고 새로 오픈한 렌탈샵인지 대부분의 자전거 상태가 아주 좋았다. 형은 오토바이를 빌리고 싶어했다.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르지만 한국에서보다 저렴하게 빌리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절대 반대를 외쳤다. 일단 사고가 났을 때가 가장 문제였다. 타국에 와서 보험처리도 안되는 교통사고가 나면 보상금액도 문제고, 마땅한 병원 시설이 없어서 혹여 큰 사고가 났을 경우 제대로 된 치료도 받을 수 없었다. 또한 떠도는 소문이지만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라오스에서 발급해주는 오토바이 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경찰 혹은 경찰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뒷돈을 챙길 목적으로 큰 금액의 벌금을 물린다고 설명해줬다.
형은 금방 수긍했고 형 또한 자전거를 빌렸다. 돈을 내고 자전거를 받으려 하니 주인은 여권을 맡기라 했다. 목숨과도 같은 여권이기에 이유를 물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지고 도망간다했다. 여행와서 자전거 타고 도망가봤자 어디를 갈까 싶었지만 불안해 하는 그의 눈빛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권을 맡겼다.
블루라군이 목표였지만 렌탈샵에서 받은 지도를 보니 외곽에 동굴이 하나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다. 거리도 멀지 않고 블루라군으로 가는 길에 있는 동굴이라 잠시 들렸다 가기로 했다. 한 15분여를 달려 지도에 있는 곳을 도착하니 입장료를 내는 곳이 나왔다. 그리 큰 액수가 아니라 사람 입장료와 자전거 입장료를 같이 지불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란 다리가 하나 보였다. 다리를 건너려 하는데 갑자기 누가 뺅!!하고 소리를 지르며 우리에게 뛰어왔다. 이 곳을 관리하는 사람같았다.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잠시 기다리니 우리에게 태국어로 뭐라 이야기했다.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앞을 가리키며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하니 온 몸으로 우리의 앞길을 막았다.
'무슨 일이냐?, 우리는 입장료를 지불했다.' 이야기 했지만 알 수 없는 말로 계속 소리쳤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아 주머니에서 돈을 한장 꺼내어 흔들며 입장료를 냈다고 표현하고 자전거를 탄 상태로 앞을 가리켰다. 그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우리의 자전거를 툭툭 쳤다. 기분이 나빴지만 어차피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다시 설명했다. 그래도 소리쳤다. 자전거 값을 지불하고 온게 억울해서라도 계속 싸우고 싶었지만 끝이 없는 싸움일 것 같아 우리가 포기했다. 짜증났지만 어쩔 수 없이 걸어가기 위해 자전거에서 내렸다.
자전거를 한쪽에 두고 다리를 건너가려는데 현지인 한명이 우리를 쓱~ 한번 쳐다보더니 자전거를 탄 상태로 다리를 건넜다. 경비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뚜껑이 열려버렸다. '우린 자전거 입장료를 냈고 저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데 왜 우리는 건니 못하냐?', '이유가 뭐냐?', '내 마음대로 자전거를 타고 건너가겠다'라고 한국어로 이야기했다. 어차피 영어든 한국어든 알아듣지 못하는 건 똑같았다. 한국어로 강하게 이야기 하면 조금은 겁먹을 줄 알았지만 그의 분노는 극을 향해갔다. 전쟁이 나서 탱크가 와도 온 몸으로 막을 사람이었다. 짜증 났지만 더 이상의 감정 소비가 더 힘들었다. 다시 한쪽 구석에 자전거를 두고 다리 앞으로 가서 관리자를 쳐다보니 건너가라고 손짓한다.
기다란 다리를 건너 도착하니 어디서 야유회를 왔는지 아주 개판이다. 쓰레기가 널부러져있고 단체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나 사람 사는 모습 비슷한 것 같다. 야유회 사람들을 피해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멀리서 보던 산과 가까워졌다. 가까이서 보니 엄청 웅장했다. 역시 신선이 산다면 딱 어울릴 만한 곳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냇물도 흐르고 이 곳 저 곳에 사람들이 쉴 수 있는 벤치들이 보였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봐도 동굴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잘 못 들어왔나 생각하는데 아이 몇 명이 어떤 구멍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 곳으로 가보니 사람이 2~3명 들어 갈 만한 작은 공간이 있었다. 절대로 동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동굴이라 불렀다.
돈이 아까웠다... 다리를 건너기 위해 관리자 아저씨랑 싸운 시간조차 아까웠다. 아름다운 산을 가까이에서 봤다는 것에 만족하고 돌아섰다.
- 인터넷을 찾아보니 진짜 동굴이 따로 있었다. 나는 한마디로 헛짓거리 한 것. 탐짱 동굴이라는 제대로 된 동굴이 있다.
뭔가 그냥 가기는 아쉬웠다. 다시 다리를 건너 나가기 전에 동굴 반대쪽 숲길을 따라 들어가니 정리되지 않은 숲길이 나왔다. 조용하고 울창해서 기분이 좋아 조금씩 안으로 더 들어갔다. 그러다 숲쪽에서 바스락하는 소리가 들려 혹시 멧돼지라도 튀어나오면 어쩌지 했는데 2인지 3명인지 몇명의 사람들이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얼굴만 살짝 내 놓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소름이 확 끼쳤다. 눈은 마주쳣지만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못 본 척했다. 다시 풍경을 둘러보는 척 하면서 그 곳을 살짝 쳐다보니 사람이 맞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 뒤를 따라오던 형은 당연히 그 것을 모르니 사진을 찍고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괜히 불안해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형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형 이 안쪽에 볼게 없네요 그냥 나가요'하고 밖으로 나갔다. 등을 보인 순간 확 튀어나와 해코지 할까봐 겁이 났지만 아무일 없는 듯 걸어나갔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나가자마자 형한테 이야기를 해주니 자신은 못봤다며 큰일날뻔 했다고 다행이라 했다.
한참을 관리인과 실랑이 한 다리.
가까이서 본 산은 상당히 웅장하다.
속이 다 보이는 물이 흐른다. 정말 깨끗하다. 마셔도 될 듯하다.
이게 동굴이란다. 이게
동굴 반대편으로 갔다가 이상한 사람들을 보고 나온 곳. 왼쪽은 바로 산쪽으로 나무가 많았다.
더 이상 볼 것도 없고 나무 사이에서 쳐다 보던 사람들의 눈빛이 머리 속에 맴돌아 바로 블루라군으로 가기로 했다. 블루라군을 갈 때 다리를 하나 건너야되는데 이때 통행세를 빙자하여 돈을 뺏어간다. 무슨 시내 돌아다니는데 통행세를 받냐... 정말 곳곳에서 잘도 뜯어간다.
블루라군은 시내에서 거리가 꽤 된다. 약 8km정도인데 한국에서는 자전거 타고 금방 가는 거리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정말 심한 비포장도로다. 흙 사이에 몇 개의 돌들이 있는게 상식적인 비포장도로이지만 이 곳은 반대다. 돌 사이에 약간의 흙이 있다. 정말 자전거 타고 가기 힘들었다. 계속 몸이 덜컹덜컹거리니 허리와 엉덩이 팔 전체적으로 다 아프고 삐쭉한 돌 때문에 속도를 낼 수 도 없다. 거기다 자동차라도 한 번 지나가면 엄청난 양의 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자전거 타고 가기 피곤하다.
하지만 숨은 함정은 따로 있다. 나만 함정에 걸렸는지도 모르지만. 그 것은 수 많은 블루라군 간판들이다. 골목골목마다 블루라군이라 써 있는 간판을 하나씩 걸고 있다. 실제로 블루라군 사진을 보면 시퍼런 물만 봤지 입구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 곳이 입구가 맞나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가는 중간중간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안해주었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계속 가는데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모여있었다. 블루라군의 늪에 빠진 듯 보였다. 나와 형도 껴서 같이 회의를 시작했다. 두명은 앞으로 간다했고 나와 형, 프랑스인 2명은 블루라군이라 써 있는 왼쪽 길로 빠졌다. 점점 나무가 우거지는것이 느낌이 안 좋았지만 이미 들어온 길 그냥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5분정도 산 길을 올라가니 꼬마 한명이 밧줄을 붙잡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 곳이 블루라군이라며 10000킵을 내라 했다. 의심쩍었지만 10000킵을 내니 밧줄을 풀어주고 들어가라 했다. 한 3분 정도 더 올라가니 블루라군이라 써 있는 간판이 나왔다.
간판 밑에는 가정집과 몇 마리의 닭들이 있었다. 심지어 한쪽에서는 아줌마가 설거지 중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는 블루라군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 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아주 탁한색이었다. 사진에서 보던 물이 아니었다. 프랑스인 두명은 바로 밖으로 빠져나갔고 우리도 나갈 준비를 하는데 내 자물쇠가 고장났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끙끙거렸지만 고치기는 힘들 것 같아 포기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통행료를 지불했던 그 곳에서 밧줄을 들고 있던 꼬마는 벌써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아까 두 명이 직진했던 길로 다시 출발했다. 한참을 가니 잡동사니 기념품을 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맞게 왔구나 싶었다. 아까는 뭐에 홀린 것이 분명했다. 기념품 상인들을 지나쳐가니 딱 봐도 블루라군이 맞다는 느낌이 드는 간판이 나왔다.
사진에서 보던대로 푸르른 물색이 보였다. 물색은 정말 끝내주는 색이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시퍼런 물이 흐르는 웅덩이 정도였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온 김에 다이빙이나 한번 하려했는데 하마터면 입고 온 바지가 호피무늬 일바지였다. 뛰어내리고 잠수하고 올라올 때 바지랑 팬티가 다 벗겨질 것이 분명했다.
다이빙은 하지 않고 한쪽 옆에서 수영하고 발만 담구고 놀았다. 나중에는 그것도 귀찮아서 한쪽에 있는 오두막에 올라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오래 자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해가 지기전에 돌아가야 하기에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다. 역시나 돌아가는 길에도 먼지는 엄청났고 엉덩이는 아팠다.
아름답다.
블루라군. 멋진 사진들을 보고 싶으면 블루라군이라 검색하면 수 많은 사진들이 나온다.
한적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바닥은 죽음이다.
한 반쯤 왔을까. 블루라군 방향에서 7시에 만나기로 한 형과 누나가 바구니에 바게트빵을 넣고 할머니들이 탈 법한 자전거를 타고 덜컹덜컹 거리면서 오고 있었다. 절대로 그 자전거 타고 블루라군 까지 갈 수 없다 이야기 하니까 블루라군까지 가지 않고 그냥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갔다가 돌아갈 것이라 했다. 7시까지 조심히 오라 인사하고 방비엔 시내로 향했다.
렌탈샵에 가서 자전거를 돌려주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방비엔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산을 왼편으로 끼고 나있는 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뭔가 있기를 기대했지만 별게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현지인 시장이 있어 잠깐 들려 이것저것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자물쇠가 망가진 것이 블루라군부터 계속 마음속에 걸렸다. 자물쇠 고장난 것 돈 얼마하겠냐 싶지만 주인이 달라는 금액대로 줘야하니 말도 안되는 금액을 부를까 싶었다. 그래도 방법이 없으니 반납을 하러 갔다. 형이 먼저 반납을 하고 이것저것 꼼꼼히 확인하더니 여권을 돌려줬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먼저 여권을 주고 자전거를 대충 살펴보더니 자물쇠를 체크하지 않고 그냥 들고 들어갔다.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그거 몇 천원 한다고 그렇게 빠른 걸음으로 나왔을까...
솔직하게 고장났다고 말했어야했다. 몇 천원에 양심을 팔았다.
7시에 만나기 전에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7시쯤 형과 누나가 왔다. 역시 블루라군까지는 다녀오지 않았단다. 우리는 맥주를 한잔 하기로 하고 근처 시장에 가 육포와 몇 가지 안주를 샀다. 형과 누나가 매일밤 맥주를 마신다는 슈퍼 앞 테이블로 가서 맥주를 마셨다. 언제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 물어보니 3일정도 후에 태국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 했다.
형은 나에게 내일 뭐하는지 물어봤다. 자기들은 암벽등반을 할 것인데 같이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내일은 형과 튜빙을 하기로 계획했었기 때문에 모레 안되냐고 물어보니 자신들은 3일내내 암벽등반을 할 생각이라 했다. 모레 같이 하자 했다. 자전거와 하루 종일 피곤해서 술을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고 금방 헤어졌다.
13. 12. 21
다음이야기
2015/07/15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라오스 방비엔. #11 액티비티의 천국 튜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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