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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3~14, 세계일주, 아시아

태국 빠이. #5 밥, 술. 카페, 해먹. 맥주, 쌤송.

by 지구별 여행가 2015. 6. 25.

나는 단 한번도 차 멀미 따위를 해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속을 울렁이게 할 만한 도로도 없고 있다하더라도 그 구간이 워낙 짧기 때문이다. 하지만 빠이를 가는 길은 험난하다.

약 200미터마다 나타나는 커브길을 700번 이상 돌아야 빠이에 도착할 수 있다. 내 옆에 앉아있던 프랑스 아줌마는 이미 지옥으로 간 듯 보였고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얼굴은 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이라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견딜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빠이는 참 작다. 아야서비스 앞에 덩그러니 내려진다. 여행객들 모두가 이제는 살았다는 표정을 하고는 바삐 짐을 들고 떠난다. 나는 딱히 갈 숙소를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던 숙소를 찾아갔다. 풍경이 좋고 외국인들이 많아서 재밌다는 평이 꽤나 많았다.

시내를 약간 벗어나서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르니 나타난 숙소의 관리자는 내가 방이 있냐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양팔을 교차하여 X자를 만들고는 자신의 일에 다시 몰두했다. 물론 방이 없다는 뜻임을 알지만 첫 번째로 기분이 나빠서 다시 귀찮게 만들고 싶었고 두번째로는 내가 의미를 오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정중하게 '방이 있는지'를 물어봤다. 허나 그는 단호하게 없다고 했다.

 

빠르게 포기하고 시내로 돌아가면서 수 많은 게스트하우스를 들려 방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방은 없었다. 설마 내 몸 누일 방하나 없을까 하고 아무생각 없이 왔는데 정말 내 몸 하나 누일 방이 없었다. 그 때 치앙마이에서 만난 형이 떠올랐다. 마지막이라 생각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상황을 설명하고 와이파이를 빌렸다. 카톡으로 연락을 했으나 1이 지워지지 않았다. 다른 곳을 찾아볼까 1이 사라지기를 기다려볼까 고민했다. 그 순간 1이 사라졌고 아야서비스 앞에서 보자는 답장이 왔다.

 

아야서비스 앞에서 만난 형 덕분에 비싼 숙소에서 잠을 잤다. 나는 딱 이틀만 자고 150밧짜리 숙소로 이동했다. 자신들의 최대 강점은 가장 저렴한 가격대인지 대형 현수막에 Cheapest Room이라 자랑스럽게 써놨다.

방은 처참했다. 당연히 침대따위는 없고 언제 빨았는지 알수 없는 매트리스 하나와 위태롭게 전선줄에 매달려있는 노란전구 하나. 그 것이 방 안의 모든 것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유리창 또한 깨져서 잠기지 바람이 항상 들어왔다. 그래도 그냥 머물기로 했다. 어차피 방에서는 잠만 잘테니까.

 

형은 일행이 있었다. 형이 사람들을 소개시켜준 후 나는 빠르게 그 모임과 친해졌다. 재밌는 모임이었다. 대부분 나보다 10살 이상 많았으니 불편할 만도 했지만 여행자들이어서 그런지 스스럼 없이 나를 대해줬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그들 때문에 2~3일 정도 머물고 떠날 빠이에서 9일을 있었다.

 

빠이는 서양 히피들이 하나둘 모이면서 유명해진 마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할게 참 없다. 물론 볼 것은 더욱 없다. 그나마 전망대 비슷한 곳에서 차나 한잔 마시면서 멀리보이는 산들을 구경하거나 시내에서 보이는 산 중턱에 있는 하얀 불상정도가 전부다. 세계2차대전 때 파괴되었다는 무식하게 생긴 철다리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간다. 나는 그나마 철다리는 가지도 않았다.

이곳 저곳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폭포도 있고 자그마한 캐년이라 불리는 곳도 있는 것 같지만 거리가 시내에서 꽤 멀다. 다시 말하면 이 곳은 빠이 시내 한복판, 약 200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곳을 오토바이로 가야한다. 오토바이를 탈 줄 모르는 사람이 일행이 없다면 빠이 시내에서 죽치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죽치고 앉아있는다고 시간이 더디게 가지는 않는다. 죽치고 앉아 하루 종일 맥주 마시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이태원 경리단길이라는 곳을 가면 외국인들이 웃통을 벗고 길 한복판에 누워 맥주를 마신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자유라 부르고, 그런 것이 하고 싶다면 일단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벗는 것을 추천하고 돈이 남아돌아 외국에서 해보고 싶다면 당장 빠이로 날라가면 된다. 웃통 벗고 술 마시고 있으면 영어 못하는 외국인 히피들이랑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놀 수 있다. 그러다보면 히피 느낌은 좀 내 볼 수 있는거지.

 

200미터 남짓한 거리는 밤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인다. 대부분 낮에는 밥집이거나 조용한 찻집이지만 밤이 되면 가게마다 하나둘 대형 스피커를 꺼내 놓고 Bar로 변한다. 거리 전체가 하나에 클럽이 된다. 홍대에서 클럽데이(요즘도 있는지는 모르겠다.)처럼 손목에 도장을 찍거나 종이 쪼가리를 찰 필요없이 그냥 놀고 먹고 즐기다가 옆집으로 옮기면 된다. 가격이 저렴한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중간중간 보이는 거리의 악사들이 흥을 더욱 돋군다.

 

그 길 한복판에 항상 가던 카페가 있었다. '카페인'이라는 이름이 맞나 헷갈린다. '딴'이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아주 예뻤다. 카운터 옆 작은 쪽문으로 나가면 햇빛을 받으면서 누워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대부분의 낮시간은 그 곳에서 소비했다. 난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에 달달한 아이스티 위주로 마시면서 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일기를 썼다. 가끔 그 곳이 질리면 숙소에 있는 해먹에 누워 영화를 봤다.

 

밤이 되면 우리는 항상 모였다.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3개월에서 1년정도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빠이내에 아는 사람도 많고 좋은 술집도 많이 알았다. 나는 그저 따라다니기만 하면됬다. 우리는 하상 샘쏭 바켓을 먹었다. 바켓에 가득담긴 술만큼 정이 넘쳤다. 밤은 길다. 절대 한사람당 하나로 끝나지 않았따.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술기운이 올라오면 외곽에 조용한 술집으로 옮겨서 모닥불 주변에 다닥다닥 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술을 마셨다.

 

밥 먹고 술 마시고, 카페를 가거나 해먹에 눕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샘쏭을 마시거나.

역시나 여행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이렇게 할 거 없는 동네에서 가장 재밌던 시간을 보냈던 것을 보면.

 

 

 

 

 

13. 12. 12 ~ 19

 

다음이야기

 

2015/07/07 - [지구별 한바퀴 - 세계일주/아시아] - 태국 빠이. #6 흔들어 또 다시 흔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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