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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기./16, 베트남

베트남 유랑기, 하노이. #12 차디찬 복도 눕다.

by 지구별 여행가 2017. 5. 5.

트윈베드, 냉장고, 에어컨, 텔레비전, 낮동안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문, 깨끗한 화장실, 12달러의 나쁘지 않은 가격. 이 숙소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있어서 저녁에 함께 맥주를 마시고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숙소를 원했다. 오전 중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하노이 파티호스텔로 옮겼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12인실 도미토리에 짐을 풀었다. 그에게 현지인들이 많은 음식점이나 시장 골목안 허름한 식당을 데려가 점심을 사먹이고 싶었지만, 그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중에 함께 먹기로 하고 깨끗한 레스토랑에서 배를 채웠다.


우리는 이후 따로 움직였다. 2012년 동생과 함께 한 여행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사람과 여행을 같이 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길위에서 누군가를 만났기에 길이 맞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헤어졌고, 누군가의 의견에 끌려다녀 여행을 한적이 없었다. 이런게 몸에 굳어져서 그럴까. 친구와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다르니 아무렇지도 않게 헤어졌다. 나는 그가 그만의 여행을 하기를 바랬고, 나는 나만의 여행이 있었다. 4~5시간 후에 숙소에서 다시 보기로했다.






하롱베이 투어를 위해 여행사를 들렀지만 만족할만한 가격을 제시하는 곳은 없었다. 어디선가 18달러 투어광고를 봤기에 30달러를 부르는 투어 가격이 성에 찰리가 없었다. 저녁에 친구와 함께 알아보는게 낫겠다 싶어 여행자거리를 벗어났다. 

길은 항상 재미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물어보면 표현을 못하겠지만 나는 길 위에서 걷는 여행이 좋았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더우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기도 했고, 예쁜 길이 보이면 그냥 따라 걸었다. 작은 공업사에서 오토바이를 고치고 있는 사람 옆에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서있으니 그는 힐끔힐끔 나를 쳐다봤다. 불편한 기색이나 싫은 흘김이 아니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사람을 구경하고 있으니 의자에 앉은 손님이 뭔가 부끄러웠나보다. 눈이 마주쳐 눈웃음을 지으 인사를 하니 손님도 씩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내 여행은 그게 전부였다. 약 2~3시간 돌고나니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씻고 싶었다. 친구가 잘 돌아다니고 있는지도 걱정되었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비행기도 못타는 놈이었다.

숙소에서 만난 그는 나름 자기의 여행을 하고 온듯 보였다. 뭐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는 생기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미친 더위를 잠시 피하며 숙소의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잠시 시간을 보냈다.


하롱베이 투어 신청전 5달러를 아끼기 위해 여행사 몇 곳을 둘러보는 나를 이해치 못했다. 그럴만도 했다.

배가 고프다는 그를 식당에 넣어놓고 몇 곳의 여행사를 돌다가 한국인을 만났다. 사파행 버스티켓과 호스텔을 대폭 깍아서 90불에 결제하기 직전이었다. 비싼 가격이었다. 16만동에 사파로 갈 수 있고, 사파의 전경이 보이는 고급호텔이 하룻밤에 50불정도였다. 

굉장히 비싼가격이라 말해주었다. 이럴 때는 특정 사람만 쓰는 언어라는게 참으로 유용했다. 목소리를 죽여말할 필요도 없이 정확하게 설명해주었고 저렴한 티켓을 파는 여행사 위치를 소개시켜주었다. 자리를 뜨며 나와의 대화가 끝난 후 바로 당신도 일어나면 내가 파토낸 꼴이되니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나와달라 하였다.

숙소 앞 작은 여행사에서 카약을 포함해서 20달러에 예약을 했다. 사실상 오늘의 일정은 끝이었다. 시장의 길바닥에서 함께 분짜를 먹으니 그 역시 맛있다하였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킬 줄 알았지만 한국에서 식신이라 불리우는 내 친구는 역시나 이 곳에서도 식신이었다. 



락호스텔은 하루에 두번인가 세번인가 프리 맥주 타임이 있었다. 공짜로 준다는데 안먹을 이유가 전혀없었다. 1시간동안 1차 프리 비어 타임을 즐겼다. 꼭 이숙소에서 머물지 않아도 마실 수 있는 듯 그 누구에게도 이 곳에서 숙박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한번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게 되면 자리를 옮기는게 귀찮으니 값비싼 안주나 맥주를 팔기에는 좋은 작전이었다.

한쪽 테이블에 앉아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다가왔다. 21살에 귀엽게 생긴 그녀는 우리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더니 호스텔 부킹 사이트에 리뷰를 적어주면 공짜로 맥주를 한병씩 준다하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나쁜 이미지가 없었기에 쿨하게 리뷰를 적어주었다. 다른 사람의 평을 봐도 역시나 나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밤거리로 나왔다. 맥주를 마시다가 한국인 남성을 만났다. 15년간 금융업에 종사하던 그는 얼마 전 퇴직하고 베트남으로 왔다하였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그러하듯 머리는 산발이었고, 그에 어울리는 수염까지 갖추고 있었다. 한잔에 150원짜리 맥주를 마시며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잔이 두잔이 되고, 두잔이 세잔이되지만 맥주 100잔을 먹어야 15,000원이었다. 부담이 없었다. 이 곳은 가히 천국이었다.

그와 헤어진 후 2차 프리 비어 타임에 참여하기 위해 숙소로 들어갔다. 1차 프리 비어 타임에 봤던 인간들이 벌게진 얼굴로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슬슬 병맥주로 갈아타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외국인들과 말을 텄다. 한 명은 미국인, 한 명은 캐나다인이었다. 캐나다인은 꼭 잭블랙 같이 생겼었는데 말투와 제스쳐 모두 비슷했다. 그에 반해 미국인은 UFC선수같았다. 몸이 아주 다부졌다. 베트남에 오기 전 태국에서 6개월간 여행 중에 무에타이 대회에 나가 우승을 했단다. 믿지않으니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형채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나온 신문 토막기사를 보여줬다.


맥주로 끝장을 봤다. 한 6시간동안 맥주를 마셨는데 취해서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맥주병이 계속 쌓였고 돈은 계속 나갔다. 정신을 차리니 복도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안났다. 이렇게 창피할수가...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찬물로 세수를 하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창피함에 잠이 안올만 했지만, 너무나 힘들었기에 눈을 감자마자 다시 잠이 들었다.


2016.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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